정부와 여당이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돼온 형법상 배임죄를 기본적으로 폐지하고, 대체 입법을 마련하기로 했다. 최저임금법 위반 관련 양벌규정에 사업주 면책 규정을 신설하고, 자동차관리법·근로기준법 등 경미한 의무 위반은 과태료로 전환해 중소기업 경영자나 소상공인이 불필요하게 전과자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30일 당정협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이 과도한 경제 형벌로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신속하게 합리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정부는 기획재정부·법무부 차관을 공동단장으로 하는 ‘경제형벌 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경제계 및 법조계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 국회 차원에서도 ‘경제형벌·민사책임 합리화 TF’를 띄워 정부와 함께 다양한 입법과제에 대해 검토했다.
당정은 1년 안에 경제형벌 규정의 30%를 정비한다는 목표 아래 1차 방안을 마련했다.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사업주의 형사처벌 리스크 해소와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민생경제 부담 완화에 초점을 맞췄다. 전체 6000여개 규정 가운데 약 110개(1.6%)가 이번 손질 대상에 포함됐다.
핵심은 형법상 배임죄 폐지다. 당정은 요건이 추상적이고 적용 범위가 넓어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정했다. 다만 중요범죄에 대한 처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신속하게 대체입법을 마련하기로 했다. 대체입법은 전문가 자문 등 거쳐 배임죄 요건을 명확히 하고 처벌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경제활동 과정에서 저지른 경미한 의무 위반은 형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한다. 자동차관리법상 승인없이 트럭 짐칸(적재함) 크기 변경 등 경미한 튜닝을 할 경우 최대 1년 징역이나 최대 1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지만, 앞으로는 시정명령과 함께 최대1000만원의 과태료로 바뀐다. 미용실 등 공중위생영업의 상호명 등 변경 신고를 안 한 경우 적용됐던 최대6개월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형은 과태료 최대1백만원으로 낮아진다. 근로계약 체결시 종사업무 등 단순명시 사항을 기재하지 않았을 경우 최대 500만원의 벌금형을 부과하던 근로기준법도 개정해 앞으로는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 과잉처벌을 막기 위해 ‘선(先)행정조치-후(後)형벌부과’ 원칙도 도입된다.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다른 사업자의 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한 경우 지금까지는 곧바로 최대 징역 3년, 벌금 2억 원의 형사처벌을 받았으나 앞으로는 공정위 시정명령을 내린 뒤 불이행 시에만 형벌을 부과한다. 은행이 고객의 외환거래 합법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경우 최대 징역 1년을 부과했던 외국환거래법 조항 역시 실제 위반 사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폐지하고, 대신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의 40% 이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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