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對美) 투자 3500억 달러에 대한 불확실성이 결국 원화 약세로 이어지면서 코스피지수가 두 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미국 내 주식 고평가 논란과 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 등으로 시장 여건도 불안해진 만큼 추석 연휴가 지날 때까지 국내 증시가 상승 전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85.06(2.45%)포인트 내린 3386.05포인트로 거래를 마쳤다. 정부 세제개편안에 대한 실망으로 증시가 폭락했던 8월 1일(-3.88%) 이후 두 달 만에 가장 크게 떨어졌다. 장중 한때 105.38(3.04%)포인트까지 내리기도 했다. 코스피지수는 3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3400선을 돌파한 지 9거래일 만에 3300대로 내려왔다. 코스닥 역시 전 거래일보다 17.29(2.03%)포인트 내린 835.19포인트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보다 11.8원 오른 1412.4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간 종가가 1410원 넘은 것은 5월 14일(1420.2원) 이후 처음이다. 전날 심리 저항선인 1400원을 넘긴 지 하루 만에 다시 1410원대에 진입한 것이다. 원화 가치 급락에 이달 들어 한국 주식을 집중 순매수하던 외국인들도 등을 돌렸다. 이날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현물(-6607억 원)과 선물(-3284억 원) 동반 순매도에 나섰다. 기관 또한 4888억 원을 순매도했고 개인만 1조 974억 원을 순매수했다.
시장 불안의 조짐은 25일(현지 시간)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발표부터 시작됐다. 미국의 2분기 GDP 증가율 확정치가 3.8%(전기 대비 연율)로 잠정치(3.3%)보다 0.5%포인트나 높게 나오자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면서 전 세계 증시가 출렁였다.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주식이 상당히 고평가됐다”고 발언한 여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공지능(AI) 버블 논란마저 제기되는 등 시장 분위기도 점차 위축되고 있다.
한국 시장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에 대해 “선불”이라고 발언하면서 외화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3500억 달러는 8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4163억 달러)의 84.1%에 해당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한국 측에 대미 투자 금액을 7월 구두 합의에 따른 3500억 달러에서 더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는 등 우려했던 관세 불확실성이 시장 충격으로 발현됐다.
단기 급등에 따른 과열 부담이 컸던 만큼 관세 협상 불확실성으로 인한 환율 불안이 차익 실현 명분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달 들어 주가가 급등했던 삼성전자(005930)(-3.25%), SK하이닉스(000660)(-5.61%) 등 반도체주 낙폭이 크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두 종목에서만 시가총액이 31조 1350억 원 증발했다.
그간 증시를 주도했던 HJ중공업(097230)(-8.57%), 삼성중공업(010140)(-5.01%), 한화오션(042660)(-2.37%), 현대로템(064350)(-2.75%), 두산에너빌리티(034020)(-1.41%) 등 조선·방산·원전 종목들도 일제히 미끄러졌다. 미국 의약품 관세 100% 부과 소식에 삼천당제약(000250)(-4.42%) 등 바이오주 또한 약세를 보였고 카카오(035720)톡 개편 실망감에 카카오 주가가 6.17% 하락하는 등 개별 종목 이슈도 반영됐다.
다음 달 3일부터 시작되는 장기 연휴를 앞두고 수급 공백이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약세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관세 협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데다 3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10월 중순까지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슈 역시 없기 때문이다. 최광혁 LS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에서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관세 협상을 통해 불확실성을 빠르게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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