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청이 서로 ‘핑퐁’만 치고 있으니 일이 될 리가 없죠. 과도기로 보고 싶어도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현실은 문제입니다.”
항체예방주사가 국가필수예방접종(NIP)에 포함되기 어렵다는 점을 취재하던 중 한 제약 업계 관계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최근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을 포함해 백신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항체예방주사들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백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예방접종 제도에 포함할지 논의조차 못 하고 있다. 식약처는 해당 의약품이 애당초 항체주사로 허가됐다는 입장이고 질병청은 식약처가 백신으로 분류하지 않았다며 손을 놓고 있다.
백신이 항원을 투여해 환자 스스로 감염에 대항할 항체를 만드는 방식이라면 항체예방주사는 완성된 항체를 직접 투여해 질병을 예방한다. 이런 이유로 항체예방주사는 스스로 항체 형성이 어려운 영유아나 고령자·면역저하자에게 통상적으로 쓰인다. 앞서 정부도 2022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항체예방주사 ‘이부실드’를 도입하고 중증 면역저하자 전원에게 이를 투약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정부 조치로 사각지대에 놓인 중증 면역저하자를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됐다”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난 지금 항체예방주사는 여전히 허가 경로가 다르다는 이유로 제도권 밖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해외 사례는 어떨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산하 예방접종자문위원회는 지난달 미국 머크(MSD)의 RSV 항체예방주사 ‘엔플론시아’를 아동 접종 권고 목록에 포함시키며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호주는 올해 2월부터 임산부와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RSV 예방접종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있다. 독일은 수년 전 이미 백신이 아니더라도 예방 효과가 입증되면 국가 예방접종에 포함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모든 항체예방주사를 NIP에 포함하자는 것이 아니다. 안전성과 효과·비용에 대한 과학적 검토를 거쳐 도입 여부를 결정하도록 제도적 기반은 갖춰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와도 기존 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논의조차 못한다면 국내 감염병 사각지대는 계속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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