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해외로 빠져 나간 국내 가상자산 규모가 100조 원을 넘어섰다. 파생상품 투자 불가 등 규제에 막힌 투자자들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며 상당한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상자산 '머니무브'...규제에 막힌 韓떠난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가상자산의 외부 이전 금액은 101조 6000억 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대비 5% 증가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30일 국내 17개 거래소와 8개 보관·지갑업자 등 25개 가상자산사업자를 조사한 '2025년 상반기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해외 이전 금액 중 신고사업자 간 100만 원 이상 이전에 적용되는 '트래블룰' 대상 금액은 20조 2000억 원(20%)으로 집계됐다. 화이트리스트(사전 등록된 해외 사업자·개인 지갑)로 건당 100만 원 이상 이전된 규모는 78조 9000억 원으로 4% 늘었다.
국내 보관·지갑 사업자의 총 수탁고도 7398억 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50% 감소했다. 이용 고객 수도 759명으로 41% 줄었다. 당국은 결과보고서에서 "차익거래를 위해 가상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물 거래 외에 마진, 선물 등 파생상품에 대한 접근이 막혀 있는 국내 시장의 한계가 투자자들을 해외 거래소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가상자산의 해외 이전 금액은 조사가 시작된 △2023년 상반기 29조 7000억 원 △2023년 하반기 38조 1000억 원 △2024년 상반기 74조 8000억 원 △2024년 하반기 96조 9000억 원 △2025년 상반기 101조 6000억 원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업게의 한 관계자는 "각종 규제가 시장을 위축시키고 가상자산의 해외 유출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외처럼 파생 상품 투자와 외국인 거래 등을 허용해줘야 시장이 크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총도 줄었다...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위축
국내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6월 말 기준 95조 1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4% 줄었다. 원화 예치금도 6조 2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42% 급감했다. 이는 대기성 거래 자금이 대폭 줄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금융당국은 "미국 관세 갈등,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으로 인해 가상자산 가격 상승세가 둔화하고 변동성이 커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거래규모도 1160조 원으로 지난해 말(1345조 원) 대비 14%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하루 평균 거래금액도 6조 4000억 원으로 12%가 줄었다.
가상자산 거래 감소로 국내 가상자산사업자의 수익도 줄었다. 상반기 가상자산사업자의 매출은 1조 1487억 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대비 6% 감소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17% 줄어든 6185억 원을 기록했다. 원화마켓은 6360억 원, 코인마켓은 174억 원 적자다.
이용자 1000만 돌파…1억 이상 보유자 18만명
이용자 수는 증가세를 보였다. 거래 가능 이용자는 1077만 명으로 지난해 말 대비 11% 불어났다. 이 중 99.99%가 개인이다. 법인은 220개 사로 집계됐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300만 명(27.9%)으로 가장 많았다. 40대 292만 명(27.1%), 20대 이하 204만 명(18.9%), 50대 202만 명(18.8%) 순이었다.
보유 자산 규모별로는 50만 원 미만 보유자가 645만 명(59.9%)으로 가장 많았다. 1000만 원 이상 1억 원 이하 보유자는 91만 명(8.5%)으로 집계됐다. 1억 원 이상 보유자는 18만 명(1.7%)이었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개인 중심의 매매, 가상자산 현물거래외 매매 금지, 외국인 투자자 차단 등의 문제로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라며 "이로 인해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로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 EU, 홍콩, 일본 등 주요국은 법인 중심으로 가상자산 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집행기관, 비영리기관 등의 일부 기관들을 중심으로 가상자산 매매가 허용되고 있다"며 "현재 가상자산 정책 통과 속도나 의지를 고려했을 때 한국은 여전히 가상자산 산업에 있어 갈라파고스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