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의료 소모품과 로봇, 산업기계 등 수입품을 대상으로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철강·자동차 등과 같이 향후 고율의 품목 관세를 매기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돼 국내 기업들의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미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24일(현지 시간) 관보를 통해 이달 2일부터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해 해당 품목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고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미 상무부는 270일 이내에 조사를 마치고 대통령에게 정책 권고안을 제출해야 한다.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 등을 결정한다. 현재 철강과 자동차, 구리 등에 관세가 부과됐으며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한 조사는 진행 중이다.
BIS의 이번 조사 대상은 로봇과 컴퓨터 제어를 받는 기계 시스템이다. 여기에는 산업용 스탬핑 및 프레싱 장비, 작업물 절단 및 용접 기계, 금속 가공용 특수 장비를 비롯해 품질 관리에 필요한 자동 검사 시스템, 산업용 로봇 팔 등 산업 공정 전반에 걸친 기계류가 광범위하게 포함됐다.
의료 소모품 및 의료기기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세부적으로 수술용 마스크, 장갑, 가운 및 의료 부품과 구성품 등이 포함된다. 이뿐만 아니라 주사기·집게·거즈·붕대·휠체어·목발·심박조율기·인슐린펌프·심장판막·보청기·혈당측정기 등 역시 조사 대상에 들어간다.
조사 결과는 로봇과 산업기계 등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상무부는 기업들에 의료기기와 기계 장비의 향후 수요 전망과 미국 내 생산이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 여부, 중국 등 주요 수출국 해외 공급망의 미국 내 역할, 나아가 해외 정부 보조금 및 약탈적 무역 관행의 영향에 대해서도 보고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상무부의 조사·보고를 거쳐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규정한다.
국내 로봇·기계 업계는 미 상무부 조사가 실제 품목 관세 부과 조치까지 연결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뉴로메카·레인보우로보틱스·DN솔루션즈 등 국내 주요 로봇 및 산업기계 업체들은 대부분 미국에 협동로봇과 공작기계 등 제품을 활발히 수출하고 있어 고율 관세가 부과될 경우 타격이 커질 수 있다.
다만 미국에 산업기계를 수출하는 업체 대부분이 한국·일본·독일 등 우호국인 만큼 실제 관세 부과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관련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들이 많지 않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며 “현지 수요를 고려하면 당장 큰 변화를 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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