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자기주식(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이같은 법안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6일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의 문제점 연구' 보고서를 내고 의무화에 따른 다섯 가지 부작용을 짚으며 신중한 검토를 주문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기업이 자기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취득 후 일정 기간 내에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으로 현재 여당을 중심으로 여러 건의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상의가 지적하는 부작용은 △자기주식 취득 감소에 따른 주가부양 역행 △해외 경쟁기업들도 다수 보유 △기업 구조조정·사업재편 저해 △자본금 감소로 사업활동 제약 △경영권 공격에 무방비 노출 등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자기주식 소각이 의무화되면 기업이 자기주식을 취득할 필요가 약해지므로 결과적으로 주가부양 효과가 사라진다.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하면 취득 1~5일 후에 시장 평균 대비 주가가 1~3.8%포인트 높았고 공시 후 6개월과 1년 수익률도 11.2~19.66%포인트, 16.4~47.91%포인트 더 오르는 등 주가부양 효과가 확인됐다. 대한상의는 이를 자사주 취득이 시장에 기업의 주가 저평가 신호를 내보내 주가 상승에 대한 주주의 기대감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 자기주식의 소각이 의무화될 경우에는 기업 입장에서 활용 범위가 급격히 제한돼 취득 유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소각에 의한 단발적 주가 상승 기대에 매몰될 경우 오히려 장기적으로 기업의 반복적인 자기주식 취득을 통한 주가부양 효과를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해외 다른 국가에서도 취득한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보유·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국과 일본, 미국 델라웨어주와 뉴욕주 등이 의무화하지 않았고 독일은 자본금의 10%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3년 이내 처분 의무를 부과하고 처분하지 못하면 소각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취득한 자기주식을 미발행주식으로 간주해 사실상 소각한 것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아울러 미국, 일본, 영국 등의 시총 상위 30위 기업들의 자기주식 보유 비중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 나라의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 총 90개사 중 58개사(64.4%)가 자기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사주 평균 보유비율은 미국 24.54%, 일본 5.43%, 영국 4.93% 등으로 우리나라의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의 보유 비중(2.31%)보다 높았다.
국가별로 미국은 시총 30대 기업 중 13개사가 자기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고 주요 보유기업은 엑손 모빌(46.8%), 홈디포(44.8%), 프록터 앤 갬블(41.6%) 등이다. 영국은 16개사로 글렌코어(10.0%), 앵글로아메리칸(9.3%), 디아지오(8.6%) 등이며 일본은 29개사로 혼다자동차(22.6%), 토요타자동차(17.5%), 후지쯔(14.2%) 등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도 밝혔다. 예컨대 현재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경우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기업 간 상호주 보유를 통해 전략적으로 제휴한 경우 합병 과정에서 자기 주식을 취득하게 될 수 있고 이렇게 취득한 자사주가 의무화로 소각돼야 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논리다.
또 합병 등 특정목적으로 취득한 자기주식까지 소각하면 자본이 감소해 업력별 고유사업도 못하게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고도 지적했다. 자본금이 줄어들면 자기자본비율, 부채비율 등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신용등급이 하락해 대출과 투자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끝으로 상의는 국내 기업의 사실상 유일한 경영권 방어수단인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면 국내 기업들이 경영권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1, 2차 상법 개정안 처리를 통해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이 적용되기 때문에 외국계 헤지펀드 등의 경영권 공격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호소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자기주식 소각을 의무화할 경우 자본시장 발전에 오히려 역행하고 부작용만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며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을 전제로 자기주식 소각 의무보다는 처분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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