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가 엔비디아·AMD·브로드컴·퀄컴에 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 대한 공동투자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TSMC에 인텔 파운드리 인수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 후 TSMC가 시너지를 함께 창출할 연합체 구성에 나선 것이다. TSMC가 미국 유력 반도체 기업과 인텔 파운드리를 인수할 경우 고전 중인 삼성전자(005930)의 고립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로이터통신은 11일(현지 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TSMC가 엔비디아·AMD·브로드컴·퀄컴에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인텔 파운드리 지분을 인수하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TSMC가 합작사를 통해 매입하려는 인텔 파운드리 지분율은 50% 미만으로 전해졌다. 로이터는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 파운드리가 완전히 외국 소유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정부가 TSMC에 인텔 파운드리 지배 지분 인수를 요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막대한 투자로 적자의 늪에 빠진 인텔 파운드리에 자금을 공급하는 한편 운영 노하우 및 기술을 전수하라고 압박한 셈이다.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의 잠재적 경쟁사인데 자금을 지원하라는 트럼프의 압박에 TSMC는 적잖이 난감한 상황이다. 특히 TSMC는 이달 3일 향후 4년간 1000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에 5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추가 건설하겠다고 밝혀 투자 부담이 대폭 늘었다. 기존 650억 달러 투자에 더하면 투자금이 총 1650억 달러(약 240조 원)에 달한다. 이에 TSMC가 인텔 투자에 함께할 동맹 기업을 찾아나선 구도다.
실제 TSMC가 공동투자를 제안한 파트너 기업들은 모두 미국 반도체 회사다. TSMC가 엔비디아나 퀄컴·브로드컴·AMD 중 한 곳이라도 잡는다면 미국 반도체 산업의 자존심인 인텔이 대만 기업에 넘어간다는 지적을 피할 수 있다. 아울러 반도체 설계 분야 대기업들로, 인텔 파운드리의 예비 고객사인 만큼 난제인 수주 물량 확보도 용이해진다. TSMC가 인텔 지분 확보 시 합작사로 지배력을 낮추면 각 나라의 경쟁 당국에서 인수합병(M&A) 승인도 보다 쉽게 받아낼 수 있으며 미국 정부의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원도 계속 가능해진다.
TSMC가 인텔 파운드리 지분 인수에 이 같은 방식으로 성공하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사업부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삼성은 ‘2030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을 2019년 발표하며 파운드리 사업을 공격적으로 키워왔지만 3나노미터(㎚·10억 분의 1m) 이하 최첨단 공정에서 수율·성능 등이 못 미쳐 현재까지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주 난항은 연간 수조 원대 적자로 이어졌다. 공장 가동률도 점차 하락하면서 올해 설비투자 예산을 지난해의 절반 수준인 5조 원 이하로 대폭 축소하기도 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 가동이 시작됐어야 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신규 파운드리 공장도 수요가 부족해 2026년 이후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8.1%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TSMC의 점유율 67.1%에 비하면 8분의 1 수준이다. 갈수록 TSMC와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데 글로벌 주요 반도체 설계사들이 TSMC와 인텔 공동투자로 손을 잡으면 삼성전자의 미래 발주 물량은 더욱 쪼그라들게 된다.
다만 투자 제안을 받은 기업들이 적극적인 참여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백악관의 압박을 받는 TSMC는 마음이 급하지만 각 사는 당분간 ‘돈 먹는 하마’가 될 수 있는 인텔 파운드리에 투자할 이유가 많지 않다.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 시장 경쟁사인 AMD는 과거 파운드리를 보유했지만 유지비 부담에 매각한 경험도 있다.
인텔을 통째로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퀄컴은 완전히 발을 뺀 상황이다. 인텔의 설계 부문에 관심을 보이던 브로드컴도 최근 “인공지능(AI)과 VM웨어로 너무나 바빠 인텔 설계 부문 인수에 관해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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