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내년부터 상장사들의 배당 여부 뿐만 아니라 배당의 규모가 적절한지 등 질적 수준을 함께 평가한다. 배당은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상장사들의 배당 지급 문화가 일정 부분 자리 잡았다고 판단한 만큼 이제는 세부적인 사안을 들여다보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상장사들의 주주환원 정책을 유도함과 동시에 주주행동주의의 고삐를 당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배당에 대한 질적 평가를 실시하기 위해 배당정책 평가 전문기관을 선정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전문기관에 상장사들의 배당 유무 뿐만 아니라 배당이 종합적인 자본배치 관점에서 적절히 고려됐는지 등에 대해 분석을 의뢰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한 기업의 배당 규모가 경쟁사 대비 적절한 수준인지 너무 적지 않은지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또 배당 수준이 지나치게 많아 대주주가 가져가는 배당 수익이 과도하지는 않은지 등을 짚어볼 방침이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 관계자는 “그간 배당 유무에 대해서만 봤지만 기업의 배당 정책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수책위는 외부 기관에 맡긴 자료를 비공개 대화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비공개대화란 국민연금이 투자 대상 기업의 중점관리사안이나 기업가치 훼손 우려가 있는 경우 해당 기업과 비공개적으로 만나 문제점과 개선 방향 등을 전달하는 수탁자 책임 활동이다. 수책위 차원에서 상장사의 이사회나 경영진 등에 요청하는 절차다. 1년 간 비공개 대화를 진행한 다음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비공개중점관리기업 선정, 공개중점관리기업 선정, 주주제안 등이 이뤄진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기업의 배당 수준을 외부 기관에 위탁해 평가하면서 주주행동주의에 보다 적극 나설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주주행동주의는 주주가 투자한 기업의 경영 방식이나 정책 개선을 요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활동으로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등이 대표적이다. 올 상반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가 2조 3000억 원 규모로 유상증자를 추진하자 국민연금이 비공개 대화 대상기업으로 지정하는 안을 논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를 할 때마다 정치적 비판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며 “외부 기관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경우 국민연금의 주주행동주의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이 이처럼 배당이 자본배치 관점에서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들여다보는 이유는 배당을 시행하는 문화가 상당 부분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배당금 규모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중 배당을 시행하는 기업은 2020년 527개사에 2024년 568개사로 증가했다. 반면 배당금 규모 자체는 2020년 33조 원을 기록한 이후 2022년 26조 원, 2024년에 30조 원으로 집계됐다. 배당 시행 기업은 늘었지만 배당금 규모가 줄면서 질적 평가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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