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정용진 회장의 이마트와 정유경 회장의 신세계로 계열 분리를 공식화한 후 처음 단행한 인사는 철저하게 성과에 기반한 ‘신상필벌’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력인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양대 대표가 유임된 가운데 실적이 부진한 면세와 패션·건설 등의 계열사 대표는 전격 교체됐다. 그룹 내 e커머스 사업을 담당하는 지마켓과 SSG닷컴의 수장도 바뀌었다. 22개의 주요 계열사(이마트 13개, 신세계 9개)의 약 40%인 8개사 대표를 물갈이한 대규모 조직 개편이다. 아울러 1980년대생의 젊은 인재를 과감히 전진 배치시키고 계열사 전반에 지원본부를 신설해 조직 내 재무관리 기능을 강화했다.
신세계그룹은 26일 이 같은 내용의 정기 인사 및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사장 승진자는 2명이다. 박주형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하우스 오브 신세계와 스위트 파크 개점 등 백화점의 혁신을 주도한 성과를 인정받아 사장으로 승진했다. 문성욱 시그나이트 대표도 사장으로 승진하고 신세계라이브쇼핑 대표를 겸직한다. 정유경 신세계 회장의 남편인 문 대표가 승진하면서 그룹 내 정 회장의 ‘친정 체제’를 더 공고히 했다는 평가다.
수장이 교체된 계열사는 △지마켓 △SSG닷컴 △신세계디에프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푸드 △신세계건설 △조선호텔앤리조트 △신세계라이브쇼핑 등 8개사다. 지마켓을 제외하면 내부 승진하거나 기존 대표들이 다른 계열사 대표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유일한 외부 인사는 제임스 장(한국명 장승환) 지마켓 대표 내정자다. 알리바바 산하 라자다인도네시아 대표 출신인 장 신임 대표는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인터내셔널이 합작한 조인트벤처(JV) ‘그랜드오푸홀딩’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지마켓을 이끌 예정이다. 합작법인의 운영 주도권을 사실상 알리바바에 실어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신세계그룹 e커머스의 또 다른 축인 SSG닷컴 새 대표에는 최택원 이마트 영업본부장을 선임했다. 공급망(SCM) 전문가인 최 신임 대표를 중용해 이마트와 SSG닷컴 간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경쟁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존 최훈학 SSG닷컴 대표는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로 이동했다.
면세점 사업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와 신세계인터내셔날(SI), 신세계건설 대표는 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교체됐다. 면세점을 이끌 새 수장은 이석구 신세계라이브쇼핑 대표다. 1949년생인 이 신임 대표는 조선호텔과 스타벅스 대표 등을 역임한 베테랑 경영인으로, 이명희 총괄회장의 측근이자 정유경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세점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 조정 등 산적한 당면 과제를 풀어나갈 구원투수 역할을 맡게 됐다.
SI의 신임 대표로는 김덕주 해외패션본부장이 내정됐다. 김 신임 대표는 상반기 영업이익이 90% 이상 급감한 조직의 실적 개선을 이끌 중책을 부여받았다. 신세계푸드는 임형섭 기업간거래(B2B) 담당을 새 대표로 발탁해 ‘식품 B2B 전문 기업 전환’ 비전을 추진하게 됐다. 기존 신세계푸드 수장이던 ‘재무통’ 강승협 대표는 신세계건설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젊은 인재의 파격적 발탁도 눈에 띈다. 신세계그룹은 SI 코스메틱1부문 대표에 1980년생인 서민성 대표를, 코스메틱2부문 대표에 1985년생인 이승민 대표를 내정했다. 이 대표는 그룹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이름을 올렸다. 지마켓 대표 내정자인 제임스 장도 1985년생이다. 이번에 신임 임원으로 선임된 32명 중 절반가량인 14명이 40대로, 전체 임원 중 40대 비율은 16%로 종전의 2배로 확대됐다.
한편 정기 인사와 함께 단행한 조직 개편에서는 계열사 전반에 재무·법무 중심의 지원 조직을 대거 신설했다. 이마트는 지원본부를 재무·지원본부로 세분화했고 신세계라이브쇼핑과 신세계센트럴은 각각 지원본부를 새로 꾸렸다.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 산하에는 재무관리담당이 신설됐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경영전략실은 기존 이마트 산하에 있던 기획담당을 경영전략실장 직속 기획팀으로 재편해 인수합병(M&A)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또 법무팀을 신설해 계약·규제 대응과 지배구조 관리 기능을 키웠다.
업계에서는 최근 신세계그룹이 e커머스·뷰티·부동산 등 대규모 투자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재무관리와 리스크 통제를 병행하기 위해 조직 정비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는 위기 극복과 경쟁력 회복을 제1 목표로 어느 때보다 성과주의 기조를 강화했다”며 “새로운 리더십을 토대로 본업 경쟁력 극대화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