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연기금이 17억 5000만 달러(2조 4400억 원) 규모로 조성되는 미국 임대 주택 투자 펀드에 출자를 검토하고 있다. 연 평균 10%가 넘는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점과 미국 내 임대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부분이 긍정 평가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국내 임대주택 시장에 대한 출자에는 난색을 표하면서 해외 자본들이 사실상 독차지하는 실정이다. 임대 주택 시장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익률과 일관되지 않은 정책 영향으로 투자를 꺼리는 것이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브릿지 인베스트먼트 그룹은 미국 임대 주택에 투자하는 ‘브릿지 멀티패밀리 리빙 펀드(BMF) 6호’를 2조 4400억 원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다. 브릿지 그룹은 내년 초 펀드 조성을 끝낸 후 미국 33개주 내 임대주택에 투자할 계획이다. 브릿지 그룹이 국내 주요 연기금에 제안한 BMF의 연간 수익률은 13~14%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IB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에서도 임대주택 투자로 유명한 운용사”라며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브릿지 그룹은 미국 대체투자운용사로 상업용 부동산 투자·관리 전문 기업이다. 설립된지 30여년으로 운용 자산은 약 490억 달러(약 68조 원)에 이른다. 브릿지 그룹이 청산한 5건의 임대주택 관련 펀드 평균 수익률은 19.2%이며, 운용 중인 펀드를 포함하면 연간 수익률은 13.4%다. 미국에서 9만 4700세대의 임대주택 자산을 운용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플랫폼도 보유 중이다. 브릿지 그룹은 자체 운용 플랫폼으로 세입자의 만족도와 비용 효율을 높이는데 주력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분야에 58조 2490억 원을 투자했다. 미국(35.2%), 유럽(26.7%) 시장에 가장 적극적으로 접근했고, 아시아(17.9%) 중에선 대부분의 자금이 호주에 투자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기금이 국내 민간 임대 시장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이유로는 공적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이 임대료 장사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탓이다. 이런 이유로 연기금이 목표로 하는 수익률의 달성도 어렵다. 또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 형태인 전세 제도가 계속해서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영향도 크다. 연기금의 한 관계자는 “정부마다 정책 기조가 바뀌기 때문에 수익률을 고려치 않고 투자했다가는 책임은 온전히 연기금의 몫이 된다”며 “장기 임대가 이뤄지는 만큼 분양(처분) 소득을 얻기 어려운 것도 투자를 꺼리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외국계 투자자들은 그간 전세 중심의 시장 구조에서 월세로의 대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국내 민간 임대 주택 시장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세계 3대 IB인 모건스탠리는 홈즈컴퍼니 등과 협력해 서울 강동구 길동(104가구), 금천구 독산동(195가구), 성북구 안암동(60가구) 일대 오피스텔을 매입하면서 임대 주택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사모펀드(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홍콩계 부동산 회사 ‘위브 리빙’과 함께 서울 영등포 양평동 고급 레지던스(157가구)와 동대문구 휘경동 오피스텔(98가구)을 사들였으며, 영국계 PEF인 ICG(Intermediate Capital Group)도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명동 소재 호텔을 인수한 바 있다. IB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자는 주로 공유 주택 형태에 투자를 하면서 높은 임대 수익을 얻고 향후 처분 소득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통해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외국계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싹 튼 민간 임대 주택 시장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7일 내놓은 부동산 대책을 통해 임대주택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LTV)을 0%로 제한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자의 경우 해외에서 대출을 받아 국내 시장에 투자할 길이 있긴 하지만 LTV 규제는 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를 주고 있다”며 “상당수 투자자들이 민간 임대 주택 시장 투자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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