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개월 만에 금리 인하를 재개하면서 한국은행으로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가 축소되면서 한은도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출 여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다음 달 통화정책방향 회의 전까지 서울 집값이 계속 오르고 가계대출 진정세가 뚜렷하지 않을 경우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8일 한은에 따르면 미 연준이 9월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추면서 한미 금리 차는 역대 최고 수준이었던 2%포인트(미 금리 상단 기준)에서 4개월 만에 1.75%포인트로 줄었다.
금리 차가 좁아지면서 한은도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하기가 좀 더 수월해졌다.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을 크게 밑돌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 환율이 치솟게 된다. 하지만 미국이 먼저 인하를 해 우리나라도 저성장 대응을 위해 통화 완화 정책을 펼칠 공간이 생긴 셈이다.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연준이 9개월 만에 금리를 내리면서 국내 경기, 물가, 금융 안정 여건에 집중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여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에 다음 달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 통방에서 금리가 인하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대에 머물 가능성이 큰 만큼 성장 진작을 위해 추가 통화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좀처럼 잡히지 않는 서울 집값이 변수다. 최근 한은의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서울 부동산 시장의 가격 상승 기대, 상승률, 거래량 등 ‘삼박자’가 모두 둔화될 때만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게 한은의 인식이다. 한은이 5월 금리 인하 이후 6월·8월 두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한 것도 치솟는 집값과 가계부채 때문이었다. 부동산과 가계부채가 진정세를 보이지 않으면 10월 금리 인하가 쉽지 않고 11월로 시점이 미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6·27 대책을 통해 수도권의 주택담보대출 금액이 6억 원으로 묶였지만 서울 강남을 비롯해 마포·성동구 등 주요 지역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셋째 주(15일 기준) 서울 전체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12%로 직전 주 대비 0.03%포인트 확대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금리 인하를 한두 달 미뤄도 경기를 잡는 데 큰 영향은 없지만 금리 인하 시그널로 서울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더 큰 고생을 하게 된다”고 강조하며 금융 안정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9월 FOMC 점도표에서 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이 크게 엇갈린 점도 한은의 신중론을 뒷받침한다. 최남진 원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미국이 강력한 추가 금리 인하 신호를 보내지 않는 한 한은이 급격하게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낮다”며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전체 신용도 확대 흐름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금리를 더 내리면 부채 확대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이날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신임 금융당국 수장들과 만나 처음으로 ‘F4(Finance 4)’ 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대체로 예상한 수준의 금리 인하지만 주요 리스크 요인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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