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국가별 상황에 최적화한 인공지능(AI) 기술을 앞세운 ‘소버린(주권) AI’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 공세에 힘을 싣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오픈AI 등과 범용 서비스로 정면 승부하기보다 이들 기업이 공략하지 못한 영역을 ‘버티컬(특화) 서비스’로 뚫겠다는 구상이다. 이해진 창업자가 8년 만에 의장직에 복귀한 이후 네이버의 글로벌 사업 확장 속도는 한층 빨라지고 있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는 이달 9일 일본 오사카 한 호텔에서 열린 ‘라인웍스 10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클라우드와 AI 기술 기반의 현장 중심 기업간거래(B2B) 서비스로 글로벌에서도 인정받는 기술 파트너가 되겠다”며 “각 나라가 안고 있는 사회적 과제를 AI 기술로 풀어가는 ‘소버린(주권) AI’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일본이나 미국 같은 선진시장의 경우 클라우드 사업 등을 본격적으로 해서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과 대결하기에는 자본적 부담이 크다”며 “네이버의 전략은 버티컬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솔루션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가 버티컬 솔루션에 주력하는 이유는 빅테크들의 범용 솔루션이 공략하지 못한 틈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공룡들이 표준 제품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산업별 과제를 깊이 파고드는 전략이다. 시장성이 높은 산업군 공략에 성공하면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김 대표는 “향후 10년 후에는 세계적인 AI 역량과 특화된 클라우드 사업, 글로벌 협업 서비스 ‘라인웍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해 있을 것”이라며 “의미 있는 수준의 사업 기반을 만들고 있어 새로운 구독형 매출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라인웍스, 일본 1위 올라…슬랙·팀즈 제쳐
일본 유료 비즈니스 채팅 시장에서 정상에 오른 ‘라인웍스’가 대표 사례다. 2016년 네이버 계열사 웍스모바일 재팬(현 라인웍스 코퍼레이션)은 현지 시장에 업무용 협업툴 라인웍스를 출시했다. 일본 산업 구조상 사무직보다 영업·점포 등 외근 인력이 많아 메시지 기반 협업 앱에 대한 갈증이 크다는 것을 포착해 올인원 협업 앱을 선제적으로 내놨다. 시마오카 타케시 라인웍스 코퍼레이션 대표는 “라인웍스는 별도 교육이 필요 없을 만큼 직관적인 사용성을 갖춘 덕분에 정보기술(IT)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쓸 수 있다”며 “라인웍스는 일본에서 방재 시스템, 119 등과 연결되는 도구로서 국가 기간망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라인웍스는 일본 업무용 메신저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굳혔다. 시장조사기관 후지키메라에 따르면 라인웍스는 2017년 이후 7년 연속 유료 업무용 메신저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일즈포스 슬랙이나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등을 제친 것이다.
라인웍스의 연 매출은 매년 약 40% 성장 중이다. 이달 기준 연간 반복 매출(ARR) 160억 엔(약 1503억 원)을 돌파했다. 라인웍스의 이용자 수는 올해 1월 기준 580만 명이다. 2년 새 130만 명이 늘었다. 글로벌 고객사 수는 59만 개에 달한다. 경성민 네이버클라우드 클라우드 제품 전략 이사는 “라인웍스 월 매출이 10년 만에 6만 6000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케어콜, 일본 고령화 문제 해결 나서
네이버클라우드는 일본의 고령화로 심화된 돌봄 공백과 노동력 부족을 AI로 해소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AI 안부 전화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을 일본에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일본 시마네현 이즈모시는 케어콜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복지사가 직접 수행하던 전화 확인 업무에 AI를 적용한 일본 최초 사례다. 네이버클라우드는 9일부터 11일까지 오사카 엑스포에서 케어콜 서비스를 시현했다. 김동회 네이버클라우드 AI 솔루션·클로바 케어콜 JP 이사는 “이즈모 외 다른 지자체로 사업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현지 파트너를 발굴하고 있다”며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추가 AI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B2B 시장 저변 확장 속도…연내 대만 진출
네이버클라우드는 글로벌 B2B 시장에서 사업 저변 확장에 속도를 낸다. 네이버랩스의 디지털 트윈, 로봇 등 첨단 기술도 현지에 출시될 예정이다. 시마오카 대표는 “네이버의 로봇 기술을 일본에서 판매하려 하고 있고, 돌봄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분들에게 로봇이나 디지털 트윈이 좋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한국의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일본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제품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내 대만 시장에 라인웍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대만 산업 구조도 일본도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올해 5월 대만을 방문한 이후 출시 작업이 한층 빨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클라우드는 태국어 특화 AI 모델을 만든다. 최근 태국의 AI·클라우드 플랫폼 기업인 ‘시암 AI 클라우드’와 태국어 기반 거대언어모델(LLM) 및 AI 에이전트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김 대표는 “클라우드나 AI 사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잠재력을 인정을 받는 매출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우디 정부와 JV로 리스크↓…레퍼런스 확보
네이버는 중동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빅테크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제3국 테크 기업으로서 기술력을 입증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와 합작사를 세워 정책 리스크에 대응하는 동시에 현지 사정에 최적화된 상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최근 사우디 주택공사(NHC)와 전략적 합작법인 설립 절차에 착수하기 위한 계약을 완료했다. 신설 전략합작법인 ‘네이버 이노베이션’은 네이버의 중동 거점인 ‘네이버 아라비아’ 산하의 첫 사업법인이다. 네이버클라우드와 NHC의 디지털 부문 자회사인 NHC 이노베이션이 공동 출자한다.
이번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네이버클라우드는 본격적으로 중동 지역에서 사업 확장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합작법인 네이버 이노베이션은 지도 기반 슈퍼앱의 구축·운영을 핵심 사업으로 영위하며, 기존 디지털 트윈 플랫폼 기반 사업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현지 파트너와 함께 사우디의 디지털 전환을 향하는 혁신의 과정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사우디의 언어, 법, 문화 등을 반영한 독립적인 LLM도 선보인다.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직속기구인 사우디 데이터인공지능청(SDAIA)과 지난해 9월 AI,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로봇 분야에서 폭넓게 협력하는 내용을 담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레퍼런스도 확보했다. 최근 사우디 메카·메디나·제다 등 3개 도시를 대상으로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구축했다.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이 완료된 3개 도시의 총면적은 서울시의 11배가 넘는 약 6800㎢로, 건물 수만 92만 동 이상이다.
해당 플랫폼은 3D 모델 기반의 다양한 도시 계획 지원 기능과 분석 결과를 제공한다. 도시 개발을 위한 토공량과 경사도 등 지형 분석, 경관·조망 분석을 위한 스카이라인과 일조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건물 설계 데이터를 연동해 건축법 위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며, 홍수 등 자연재해 시뮬레이션 기능도 지원한다. 사우디 디지털 트윈 플랫폼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발라디(Balady)는 향후 플랫폼 구축 도시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상영 네이버클라우드 글로벌 DX&이노베이션 부문장은 “현지 파트너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대상 지역을 확대하며, 새로운 활용 사례를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사우디 국부펀드(PIF) 산하 부동산 개발 기업 ‘뉴 무라바’와도 로보틱스,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등 분야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김 대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 혁신을 함께할 기술 파트너로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겠다”며 “기술 기반의 실질적인 협력 성과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와 모로코에 데이터센터 구축…유럽 공략
네이버는 유럽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빅테크들이 유럽에 진출에 있지만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로 시장 수요에 100% 대응하진 못하고 있는 상황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네이버는 엔비디아 및 넥서스 코어 시스템즈, 로이드 캐피탈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모로코에 차세대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 데이터의 저장부터 처리, 운영까지 전 과정을 현지에서 독립 수행하는 소버린 클라우드·AI 구조를 마련한다. 전력과 운영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높은 모로코에 500메가와트(MW)급 재생에너지 기반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유럽 시장에 효율적인 인공지능(AI) 인프라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유럽과 인접해 있으며 다중 해저 광케이블로 연결된 모로코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다. 김 대표는 “유럽은 글로벌 빅테크들이 이미 주효하게 진출한 시장이지만 전기가 너무 비싸고 부족하다는 고충이 있다”며 “모로코 정부와 함께 모로코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유럽에서 필요로 하는 AI 워크로드를 공급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연내 엔비디아와 최신 블랙웰(GB200)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탑재된 40MW급 AI 슈퍼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한다. 이후 500MW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채선주 네이버 전략사업대표는 “사우디에서 입증된 신뢰가 이번 프로젝트 참여로 이어진 것”이라며 “이번 협력은 네이버가 보유한 클라우드와 AI 기술이 일본, 동남아, 중동을 넘어 유럽까지 확장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진 창업자 복귀 이후 속도 붙어…AI G3 도약 기여
이 의장의 의장직 복귀로 AI 연구개발(R&D)에 속도가 붙으며 네이버의 글로벌 영토 확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 대표는 “팀네이버 전체의 사활을 건 R&D 투자가 진행 중”이라며 “지난해까지 투자를 많이 했지만, 그것을 훨씬 넘는 수준으로 올해와 내년 투자가 기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창업자가 오면서 R&D 투자 의사 결정이 굉장히 빨라지고 있다”며 “숫자를 말하기는 애매한데, 굉장히 큰 규모로 (투자가) 늘어날 것”고 전했다.
네이버가 글로벌 무대 영향력 확장에 성공해 한국의 ‘AI 3대 강국(G3)’ 도약을 이끌지 주목된다. 네이버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현 흥국증권 연구원은 “국가 정책이 AI 투자에 집중되며 네이버 AI 모델과 인프라의 기술력이 고도화될 가능성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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