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방국에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올리라고 압박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와 관련 장비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국가 안보를 내세운 조치지만 미국 방산 기업에 새 시장이 열리고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은 일제히 첨단 제조업 육성을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소위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걸고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안보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 관세 압박을 통해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50%로 대폭 끌어올리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포스코와 현대제철(004020)은 공동으로 미국 루이지애나에 제철소 건설을 추진할 만큼 관세 압박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다.
미국은 정권과 관계없이 꾸준히 산업 정책을 펼쳤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 역시 기업에 보조금과 세액공제 같은 혜택을 제공하는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을 입법화했고 바이오 산업을 미래 신산업으로 선정하는 ‘국가 바이오 기술 및 바이오제조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내 연구와 제조를 지원했다.
EU는 2030년까지 1조 유로를 투자하는 ‘그린딜’을 추진하는 한편 AI와 데이터·양자컴퓨팅 등 디지털 중심 산업 강화를 위한 신산업 전략을 2020년 이미 발표한 바 있다. 독일은 ‘산업전략 2030’을 통해 기계와 화학·항공우주 등 전략 산업군을 선정했다.
일본은 2022년 신산업 정책과 반도체·디지털 산업 전략을 내놓았는데 이를 바탕으로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를 유치했다. 또 2023년 제정한 GX추진법을 통해 탈탄소 투자와 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중국은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제조 2025’를 통해 다양한 산업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추며 경쟁국을 압도하고 있다. 중국은 제조 2025의 뒤를 이을 신(新)버전의 마스터플랜을 수립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반도체 등 첨단기술 육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은 “중국의 부상과 첨단 과학기술의 중요성, 복잡해진 공급망으로 경제 안보가 점차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한국도 대대적인 신산업 정책을 가동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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