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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빚탕감, 지속성장 위한 전략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




지난해 서민금융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사채 이용자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은 불법임을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연 1000%’라는 살인적 이자에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은 사채를 빌려 쓸 수밖에 없다. 뒤집어 보면 한국 사회의 금융 안전망이 시급하게 보완돼야 한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방법이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경고했다. 서민과 자영업자들의 이자 부담이 크다는 측면만 부각해 최고금리를 낮추는 식으로 가면 되레 제도권 금융의 문턱을 높이고 절박한 이들을 불법 사금융이라는 암시장으로 내모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떠오르는 해법이 ‘포용 금융(Inclusive Finance)’이다. 포용 금융은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소외 계층이 금융 서비스에 접근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다. 실제로 포용 금융은 사회의 상생 가치를 실현하는 핵심 수단이다. 힘든 이들을 배제하기보다 포옹하듯 껴안는 것이다. 서로의 심장 소리를 느끼며 안정을 찾는 포옹처럼 포용 금융은 우리 사회 곳곳에 선한 울림을 전하며 공동체를 질서 있게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포용 금융을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금융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이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이 말했듯 금융 문맹은 생존을 어렵게 만든다. 이제는 돈의 기능과 신용 관리를 이해하는 ‘금융 지식’과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금융 지능’,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금융 인격’이 함께 요구된다. 국민 개개인의 금융 역량이 강화되고 그 중요성을 이해할 때, 포용 금융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도 이뤄질 수 있다.



정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금융 의사 결정에는 자기 책임이 따르지만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법 사금융과 보이스피싱, 전세사기 등 만연한 민생 침해 범죄는 이들 사안이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공동의 책임을 인식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권 금융기관의 참여 유도와 예산 지원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한계 채무자 지원과 빚 탕감에도 이러한 철학이 필요하다. 경제성장의 논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가 담겨야 한다. 이 시대의 불안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포용 금융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2023년 한 해에만 ‘묻지 마 폭행’이 하루 평균 3건 이상 발생했다고 한다. 최근 5년간 ‘무차별 범죄’만 270건이다. “인생이 답답했다”며 일면식도 없는 이를 흉기로 살해하거나 10대 청소년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은 사회 곳곳에 스며든 절망감이 분노로 분출되고 있는 비극적 현실을 보여준다.

포용 금융은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배제가 아닌 포용, 경쟁을 넘어선 상생, 모두의 따뜻한 공감이 성숙한 미래를 여는 열쇠다. 지금이 바로 금융 안전망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복원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나 혼자 살 수 있는 개인과 기업은 없다. 금융의 본질이 이윤 추구에 있다 하더라도 사회의 안정과 약자 보호라는 공적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금융사들 역시 금융을 통해 훼손된 공동체 의식을 복원한다는 생각으로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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