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비은행 기관의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2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5 국제컨퍼런스’에서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와 대담하며 “미국과 달리 한국에는 자본 규제가 있기 때문에 비은행권이 결제 사업에 참여했다가 자본 규제를 우회할 수도 있어 이런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월러 이사는 스테이블코인이 민간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결제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은 결제 수수료가 상대적으로 높아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이 우호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추진하는 디지털화폐(CBDC) 도입에 대해서 두 사람은 대조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월러 이사는 “CBDC는 미국의 지급결제 시스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전 세계적으로도 관련 논의가 과거보다 속도를 늦추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한은이 CBDC 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관련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월러 이사의 입장은 미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궤를 같이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CBDC 도입을 전면 금지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행정명령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최근 월러 이사가 다소 비둘기파적 행보를 보이는 배경에는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는 상황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그의 친정부적 발언에도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다만 월러 이사는 국가 간 지급 결제 시스템을 개선시키는 목적의 ‘아고라 프로젝트’에 대해선 “실용적인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이 프로젝트엔 미국 등 5개 기축통화국, 한국, 멕시코 중앙은행이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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