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영 전 외교부 경제통상대사가 2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미 통상 협상 결과가 우리에게 불리해지면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조정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 전 대사는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교섭대표로서 국회 비준 및 발효를 담당하고 주제네바 대사를 역임하는 등 다자·양자·지역 통상 협상을 두루 경험한 통상 전문가다. 이달에는 외교부 차관을 지낸 이태호 법무법인 광장 고문과 미중 갈등에 따른 리스크, 경제안보 조치 등을 망라한 저서 ‘경제안보와 통상리스크’를 발간하기도 했다.
최 전 대사는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미국과 먼저 협상을 마친다고 더 유리하다는 보장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정부가 수입 철강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 2018년 당시 한국은 먼저 협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유럽연합(EU) 등 후속 협상을 한 타국에 비해 불리한 결과를 얻게 됐는데 이 같은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 전 대사는 “철강 쿼터제는 이후 우리 기업에 두고두고 족쇄가 됐다”며 “먼저 협상을 한다고 해서 유리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가 방어에만 치중하지 말고 적극적인 공세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내놓았다. 최 전 대사는 “방어 논리를 구축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미국의 약점, 즉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카드를 찾는 것”이라며 “현재 미국 조선업 진출은 존스법 등으로 막혀 있는데 한국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해준다든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참여한다면 공사에 쓰이는 철강·자재 등은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해준다든지 등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더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존스법은 미국에서 건조돼 미국 선원이 75% 이상 탑승한 미국 국적 선박만 미국 항구 내 해상운송이 가능하도록 제한하는 법으로 미 조선업의 대표적 규제로 꼽힌다. 미국과 규제 협상에서 이 같은 규제 허들을 넘을 수 있는 반대급부를 얻어내야 한다는 게 최 전 대사의 제언이다.
한국의 기회 요인으로는 신뢰 자산과 대미 투자를 꼽았다. 그는 “한미 간 군사 및 경제 동맹을 유지하면서 상호 간에 쌓은 신뢰 자산이 여전히 크고 한국의 대미 투자가 최근 급격히 확대된 것은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이 한국에 양보를 요구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게 최 전 대사의 지적이다. 만약 협상이 조기 타결되더라도 미국이 추가 요구를 해오고 이를 수용하지 못할 때 재차 관세 보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그는 이어 “일본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협상장에 나타날 경우 한국에 큰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 전 대사는 최근 대선 정국에서 언급되는 통상교섭본부 개편 논의가 표면적인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땜빵 식의 졸속 개편이 반복돼온 정치 현실이 안타깝다”며 “어느 부처에 둘지를 논의하기 전에 통상 조직의 전문성·독립성 등을 고려해야 하며 통상 이슈가 비무역적인 사안으로까지 확대되는 현실을 감안해 무역·투자·분쟁·중재·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조직에 포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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