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기술 개발이다. 기술적 변화에서 뒤떨어지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기술 혁신 사이클이 올 때마다 미국 기업 대비 크게 뒤처지는 국내 성장 기업들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술 개발이 경제와 주식시장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시기가 마냥 지속되진 않는다. 큰 혁신 직후에는 정체 국면이 반드시 온다. 제품화와 이를 통한 수익 창출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역사만 봐도 그렇다. 애플은 새로운 기술에만 집착한 나머지 기존 수익창출원(캐시카우)인 ‘애플Ⅱ’를 홀대해 경영 성과를 악화시킨 스티브 잡스를 1985년에 해고했다. 그러나 이를 주도한 존 스컬리는 정반대로 엔지니어를 키우지 못했고 혁신을 일으키지 못한 대가로 8년 뒤에 물러났다. 이후 경영자로서의 모든 능력을 갖춘 일종의 ‘사기 캐릭터’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오늘날의 애플을 완성했다.
요즘 ‘국내 기업 중에서 과거와는 달리 신기술 제품을 선도할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다만 과거에도 항상 미국이 제품화 혁신까지 선도했고, 국내 기업들은 이를 발 빠르게 추종해왔다는 것을 기억하자. 개인용 컴퓨터(PC), 스마트폰 등 모든 핵심 제품이 다 미국에서 개발됐다.
2007년에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대다수가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존 업체들이 제품 경쟁력은 물론이고, 앱스토어라는 혁신적인 사업 방식에 밀려 멸망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미국 기업들은 애플을 견제하기 위해 노키아나 삼성전자와 손을 잡았다. 삼성전자는 구글과 손잡고 공고한 경쟁 체제를 구축해 나갔으며 노키아는 최종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됐다.
최근에도 동일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같은 미국 내 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국내 기업들과 손잡고 테슬라에 대항해 생존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GM의 미국 내 영향력과 물리적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의 발전으로 압도적인 기술을 보유한 테슬라의 경쟁력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딥시크 사태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로 특정 국가나 기업의 기술 독점이 견제받고 그 결과 뒤처진 기업에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전에도 오픈소스인 리눅스로 인해 윈도우 독점의 의미가 퇴색되고, 이를 활용한 생태계가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졌던 적이 있다.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혁신 부족 탓에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어려워 보인다’고 장담하지 말자. 과거에도 항상 그랬다. 우리가 제품화 경쟁력과 관련 인프라를 갖고 있는 한, 적어도 최소한 미국 선도 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서라도 생존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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