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산 ‘레드 메모리’ 공습경보가 울리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기술 격차가 거의 없는 범용 메모리를 중심으로 물량 공세에 나서며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실적을 올리는 하방 시장을 중국에 내줄 경우 선단 칩 개발 경쟁력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3일 시장조사 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D램 시장에서 중국 메모리 업체의 점유율은 올 3분기 6.0% 수준에 그쳤으나 1년 뒤인 내년 3분기에는 10.1%를 기록해 10%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레드 메모리의 약진은 중국 1위 메모리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이끌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CXMT의 D램 생산량이 올해 전 세계 생산량의 10%를 넘길 것으로 분석했다. 트렌드포스의 전망치보다 점유율 확대 속도가 더 빠를 것이라고 본 것이다.
CXMT의 주력 제품은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저전력 D램인 LPDDR4X 등 레거시(구형) 메모리들이다. DDR5나 LPDDR5X를 생산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비교하면 3세대 이상 기술력이 뒤처져 있다.
문제는 이들이 초거대 내수 시장과 자국 칩을 쓰면 정부 보조금을 주는 지원 정책 등을 업고 메모리 시장의 법칙을 깨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레거시 칩은 이익률이 낮기 때문에 한번 선단 칩 경쟁에서 밀리면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전자가 D램 시장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며 30년 넘게 1위를 유지한 비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존 메모리 법칙이 깨지면서 공급이 늘어나자 레거시 칩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기술 수준도 점차 향상되고 있다. CXMT는 최근 2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해 고객사들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한국과 기술 격차가 있지만 중국 내부의 인공지능(AI) 칩 시장을 잠식할 수 있는 제품이다. 김용석 가천대 교수는 “상대적으로 추격이 쉬운 낸드플래시 분야는 이미 기술 수준을 따라잡았다고 본다”며 “HBM 등의 근원 경쟁력인 D램 시장은 기술 격차를 지켜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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