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비상금인 ‘예비비’를 500억 원 가까이 끌어다 쓴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2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열린 국무회의에서 농산물 물가 안정 대책을 위한 480억 원 규모의 일반 예비비 지출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통상 설날과 추석 등 물가 관리가 필요한 시기에만 농축산물 할인 지원 정책을 펼쳤는데 올해는 농산물 가격 급등에 할인 지원을 계속하면서 책정된 연간 예산(1080억 원)을 거의 소진했다. 농산물 가격 안정 기금을 통한 납품 단가 지원과 대규모 할당관세 조치 등까지 고려하면 올해 상반기 농산물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쓴 돈은 사실상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본 예산에 예비비 480억 원을 합친 올해 농축산물 할인 지원 예산 1560억 원은 역대 최대 규모로,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2021년 한 해 동안 1540억 원을 집행한 바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추석과 김장철 등 할인 지원 예산 투입이 필요한 이벤트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본예산을 다 쓴 것은 아니기 때문에 또 예비비가 투입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지만 때 이른 불볕더위와 이상기후에 농산물 가격이 다시 출렁일 가능성이 남아 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김장철 추가 할인 지원을 위해 예비비 120억 원을 투입한 바 있다. 기상청은 지난달 3개월 전망에서 올여름은 평년보다 덥고 비가 많이 내릴 확률이 높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돈을 투입하는 식의 물가 정책은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비비는 갑작스러운 재난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쓰기 위해 남겨두는 것인데 농산물 가격 급등 문제는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예견돼온 만큼 예비비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런 식으로 할 경우 (재정 투입을) 자의적으로 할 여지가 커진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품목별 지원이 아닌 곡물·채소·과실·축산물 등 부류별 물가 관리라는 방식을 보완적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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