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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유통산업발전법 ‘붉은 깃발법’으로 기억될까





지난 1900년과 1913년 부활절 아침, 13년의 간격을 두고 뉴욕 맨해튼 5번가의 풍경을 찍은 사진 두 장이 있다. 1900년에는 말과 마차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불과 13년 만에 거리를 가득 메운 것은 마차가 아닌 자동차다. 미국 포드사가 1908년 T형 자동차 대량생산에 성공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면서다.

국내 유통시장을 향한 정치권의 시각은 120년 전 맨해튼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당시 마차운행자와 정부는 자동차 보급에 반대하며 자동차 운행을 막기도 했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탈것의 패러다임이 넘어갈 당시에도 마차운행자와 정부는 마차 보호에 함몰돼 자동차 산업은 보지 못했다. 전통시장 보호에 우선시돼 온라인쇼핑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도 대형쇼핑몰만을 시장의 적으로 여기는 것과 데자뷔되는 장면이다. 국내 유통시장이 마차에서 자동차를 넘어 온라인쇼핑이라는 미래의 탈거리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일 망원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관련해 “주된 것이 쇼핑몰에 대해 의무휴일제를 도입하자는 취지인데 서둘러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대형마트에 이어 스타필드·롯데몰 등 복합쇼핑몰도 월 2회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전통시장과 오프라인 쇼핑몰의 관계를 ‘선악’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11개에 이른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의 복합쇼핑몰 휴일영업 제한, 이동주 의원의 백화점·면세점 의무휴업 지정 등이 대표적이다.



대형 오프라인쇼핑이 아닌 온라인쇼핑이 국내 유통산업의 패권을 위협하는 사이 정치권의 프레임은 여전히 오프라인 쇼핑몰에 눌린 전통시장 보호에 갇혀 있다. 전통시장 보호의 도그마에 빠져 정치권은 유통산업 발전이라는 숲을 놓치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복합쇼핑몰 휴일영업 제한, 백화점·면세점 의무휴업 지정 같은 열거주의 규제방식으로는 국내 유통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일부 전통시장에서는 대형쇼핑몰을 유치해서라도 쇼핑객들을 유인해 인근 상권을 살리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암 롯데몰은 인근 17개 시장 중 한 곳의 반대로 7년째 표류하고 있다. 시장 한 곳의 반대만 부각되고 찬성표를 던진 16개 전통시장의 목소리는 묻혔다. 몰이 들어와서라도 상권이 살아난다면 쇼핑몰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논리다.

영국은 마차사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최고속도를 시속 3㎞로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 ‘붉은깃발법’이다. 영국은 가장 먼저 자동차 산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프랑스에 주도권을 내줬다. 붉은깃발법은 시대착오적 정책이 국가 산업에 어떻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역시 시간이 흐른 뒤 한국판 붉은깃발법으로 불리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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