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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 허물고 연구하는 조직으로...국립과학관 체질 확 바꿨죠

[이사람]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연구관들 전공과 다른 분야 배치 많아

학술활동 막는 행정업무 대폭 줄이고

외부 인력과 협업할수 있는 환경 마련

소외된 계약직 해설사들과 업무 공유도

수십억 전시물 폐기 않고 학교 등 기증

현장 전시 투자 자제 온라인과학관 운영

민간인 출신이라 기관평가 연연 안해

단기 성과보다 긴호흡으로 혁신 나설 것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 관장/과천=권욱기자




지난 2월 하순 국립과천과학관이 개장 이래 초유의 장기휴관을 단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두 달이 넘은 이달 6일 다시 문을 열었을 때 과천과학관의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석·박사급 연구사·연구관들은 전공과 관계없는 행정업무에서 벗어나 본연의 연구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내부 업무 칸막이가 사라지고 타 과학관과의 협력사업이 활성화됐다. 현장전시 중심이던 관람 프로그램은 온라인 전시회로 확장됐다. 주요 전시기획 결정 과정에 관람객들을 최전선에서 맞이하는 현장 일꾼인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SC·과학해설사)들이 일종의 옵서버로 참관하게 됐다. 이 같은 환골탈태를 이끌어낸 주인공은 2월26일 취임한 이정모(사진) 관장이다. 국내 최초의 민간인 출신 국립과학관장답게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2일 과천과학관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이 관장은 자신의 사무실 한쪽에 걸려 있는 파란색 가운을 보여줬다. 원래는 SC들이 입는 일종의 유니폼인데 자신도 직접 입고 전시관 곳곳을 다닌다고 한다. 직접 발품을 팔며 고객인 관람객의 반응을 살피고 현직 스태프들의 애로사항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는 “저 스스로 (관람객들께)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라고 소개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SC들께서 이 옷을 주셔서 입고 다닌다”며 “그래야 관람객들께서 저를 SC라고 생각해 이것저것 묻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시관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 거의 만 보씩 걷게 되더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SC들은 원래 외부 용역회사에서 파견된 계약직원들이었다가 현 정부 들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그럼에도 과학관 정직원들과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어 서로 교감이 많지 않았다. 이 관장은 “SC분들의 공간은 건물 구석의 방에 떨어져 고립돼 있더라”며 “그래서 ‘이분들에게 중심적인 역할을 줘보자’는 생각을 갖고 핵심업무 부서들 사이로 업무공간을 옮겨 주요 부서들의 회의 내용을 함께 듣고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에 위배되는 과천과학관의 SC 해고규정도 삭제하기로 했다. 이 관장은 “SC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한 내부 규정이 있더라. 현행법상 금지된 행위인데도 업무에 긴장감을 주자는 차원에서 해당 규정이 유지돼온 것 같다”며 “그런 말도 안 되는 규정은 삭제하고 대신 우리도 SC 노조 측에 요구할 것은 정확히 요구하는 방향으로 소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취임 이후 과천과학관의 연간 기획전시행사 횟수를 대폭 줄였다. 전시 내용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는 “기획전시회를 준비할 연구사·연구관들은 20명 정도에 불과한데 1년에 보통 15개가량의 전시기획행사를 열었더라”며 “인력에 비해 이렇게 기획행사가 많으면 깊이 있게 기획하고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해외 전시 프로그램을 따라 하거나 민간 전시대행업자들이 가져오는 기획제안서를 받아 행사를 여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고 진단했다. 그는 직원들을 설득해 중요한 대형 기획전시회는 2년가량의 준비를 거쳐 격년에 한 번씩만 열고 작은 기획전시회는 매년 약 네 번씩 열기로 했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 관장/과천=권욱기자




전시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려면 담당 연구사·연구관들이 해당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식견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관장이 취임해보니 연구사·연구관들이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분야를 맡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는 “예를 들어 고생물학을 전공한 박사를 천문과학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식으로 인사배치를 하면 그분이 천문과학에 대해서는 아는 게 일반 시민하고 차이가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더구나 대부분의 연구사·연구관이 과학관에서 본연의 학술연구활동은 거의 포기한 채 행정업무를 처리하느라 허덕이고 있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주요 과학 분야 박물관에서는 연구사·연구관을 비롯한 큐레이터들이 학술연구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과학관에 오면 학자로서의 활동을 접는 종착역이 돼버리고 말더라는 것이다. 이 관장은 “미국 자연사박물관 등에서는 과학관에서 큐레이터 등에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직접 박사 학위를 주기도 한다. 그 덕분에 큐레이터들이 교수직을 겸직하기도 하고 아예 대학교수로 전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국내 과학관들은 대부분 직원들이 연구역량을 계속 쌓을 길을 막아놓아서 많은 분들이 과학관에서 평생 근무하다 거기서 이력을 끝내고 말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관장이 찾은 해법은 불필요한 행정업무 등을 줄여주고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춰주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직원들을 자신의 연구전공에 맞게 다시 배치하기로 했고 (행정업무 등을) 3분의1 정도 덜어내서 연구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우리 인력과 외부 인력이 함께 실험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연구교육센터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전시 과잉투자 대신 온라인 전시·교육활동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이 관장 취임 이후 일어난 변화다. 그는 “과천과학관 내의 주요 전시관마다 보통 20억~50억원씩 들여 지었는데 몇 년 활용하고 나면 멀쩡한 전시물들을 싹 부수고 다시 해외 트렌드에 맞춰 바꾸는 경우가 많더라”며 “50억원이면 어지간한 국내 중소 과학관 1년 치 예산일 정도로 큰돈인데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직원들에게 얘기했다. 이미 계획돼 있는 올해의 전시관 변경 작업까지만 진행하고 내년부터 2년간의 제 잔여 임기 동안 돈 들여 전시관을 뜯어고치는 것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전했다. 이어 “전시관을 변경할 일이 있더라도 비싼 전시물들을 부숴서 폐기하지 않고 떼어서 다른 과학관이나 학교에 줄 수 있도록 모듈식으로 설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현장전시관에 대한 과잉투자를 줄이는 대신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등을 활용한 온라인 과학관을 열어 보다 많은 대중이 과학관의 훌륭한 전시 콘텐츠를 감상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전임 관장들은 왜 이런 혁신을 단행하지 못했을까. 정부의 공공기관 평가 체계가 질적 성과보다는 양적 성과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관람객을 유치했나와 같은 정량적 지표를 중심으로 평가점수가 매겨지니 현장전시기획에 과잉투자가 관행처럼 이뤄졌고 이로 인해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직원들은 연구활동을 접어둔 채 행정업무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관장직에 공무원 출신이 선임되면 임기 3년 동안 높은 기관 평가 점수를 받아야 원래 근무하던 부처로 돌아가 승진할 수 있기 때문에 단기성과를 내는 단발성 사업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관장은 “제가 기획전시 횟수를 줄이고 과도했던 관람객 유치 실적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하니까 ‘기관 평가 점수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을 하는 분들도 계시더라”며 “그런데 기관 평가 점수를 누구를 위해 높게 받는 것인가 하고 보니, 우리 과학관의 경우 관장직과 단장직 딱 2명의 인센티브를 위한 것이더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저는 (관료가 아닌 민간인 출신이어서 평가 점수를 잘 받아 연임하겠다거나 공직을 더 맡겠다는 욕심 없이) 이번 자리를 제 인생의 마지막 직분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위한 평가 점수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정량적 실적이 아닌 정성적인 측면에서 과학관의 역량을 높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He is...△1963년 경기 파주 △서울영동고 △연세대 및 동 대학원 생화학 학사·석사 △독일 본대학교 대학원 화학과 박사과정 수료 △연동청소년학교 교사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현 국립과천과학관장 △과학기술 앰버서더/과천=민병권·김성태기자 newsroom@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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