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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공장 보수·군함 시운전 줄줄이 차질

[탄력근로 확대 합의 6개월째...정치권 뒷짐에 산업현장 발동동]

"추석·늦더위 대목에도 막막"

계절업종도 인력난에 타격





조선업체 A사는 방사청에서 수주해 해상 시운전에 들어간 군함에 교대근무 인력 투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배 위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상황에 1주일에 3일만 머물러도 주 52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기 때문이다. 당장은 노사 합의로 ‘간주근로시간제’를 적용하고 있지만 시운전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 최소 6개월 이상의 탄력근로 기간 없이는 인력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가 19일로 6개월이 지났지만 국회 문턱도 넘지 못하며 기업들의 피가 마르고 있다. 3개월 노사합의로 여름을 간신히 넘긴 계절업종들은 당장 다가오는 추석과 늦더위 대목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 또 정기보수가 예정된 석유화학 업체와 해상 시운전을 목전에 둔 조선사 등 개별 업종뿐 아니라 신제품 개발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주 52시간 근로에 맞추려 올여름 에어컨 수리인력 확보를 위해 500명의 기술강사를 현장직으로 투입했다. 전체 현장직 인원이 7,400명이므로 약 8%의 사무직이 일시 전환된 셈이다.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는 “사전점검 물량을 3배 정도 확대했는데도 에어컨 수리 지연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해 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도 시행하지 못했다. LG전자는 5·6·7월 3개월을 탄력근로제로 노사 간에 합의한 후 늦더위와 추석 특수를 앞두고 8·9·10월을 다시 합의했다.

빙과와 보양음식 업체 등도 단위기간 3개월에 가까스로 맞춰 여름 성수기를 넘겼다. 닭고기 업체 관계자는 “임시직과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간신히 여름을 넘겼다”고 말했다. 52시간 근로제가 중소기업(50~299명)으로 확대되는 내년에는 더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 대기업 납품기한에 맞춰 특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잦지만 3개월 단위로는 초과근로 기간이 한 달 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유연근로제는 52시간 근로제에 따른 보완입법 성격이 커졌다”며 “탄력근로제를 시작으로 전반적인 유연근로제 확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변재현·민병권·박효정기자 humbleness@sedaily.com

스마트폰 개발 지연 등 불보듯...“3개월 탄력근로는 있으나마나”

■산업현장 발동동

정유·화학·조선업체 등 비용도 문제지만 제품생산도 혼란

전자 “신제품 준비에 1년 걸리는데 3개월론 트렌드 뒤처져”

국회는 네탓 공방...‘탄력근로 6개월 확대’ 9월 통과 불투명



하반기 정기보수가 예정된 정유·화학 업체들은 혼란스럽다. 정유·화학 업체들은 그간 공장을 멈추는 정기보수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1인당 주당 80~90시간의 보수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며 1인당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보수기간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유 업체 관계자는 “1~2주 정도 걸리는 소보수(1년)는 어떻게 버텨보지만 45~60일이 소요되는 대보수(4~5년)기간에도 이대로 인력투입이 제한된다면 공장을 얼마나 멈춰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고 말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국회 문턱도 넘지 못한 가운데 산업현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특히 탄력근로 단위기간 6개월 연장을 예상하고 인력계획을 세웠던 업체들은 하반기 인력수급 계획을 다시 짜는 한편 집중근무 등이 필요한 일부 업종에서는 제품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주력산업 중 탄력근로제에 당장 타격을 받은 업종은 조선업이다. 조선사 고위관계자는 “탄력근로제 연장이 불발되면 비용 증가와 현장의 혼란은 물론 우리나라의 국방 분야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안에서 대양까지 오가는 배를 만드는 조선업은 건조 후 바다에 나가 시범운전을 해 결함 등을 점검하고 납품한다. 무역에 쓰이는 컨테이너선 등은 보통 한 달이면 점검이 끝나지만 잠수함 등 특수선은 6개월에서 1년의 시운전이 필요하다. 특히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해양환경을 체크하며 결함을 시정하는 시운전은 현행 주 52시간과 3개월간 근로시간을 노사 합의로 늘릴 수 있는 탄력근로제의 틀에서는 시행이 불가능하다. 한 조선 업체 관계자는 “군함과 잠수함 등 특수선을 만들면 전문가들이 승선해 해상에서 최대 1년간 밤낮으로 시운전을 해야 한다”며 “현재 조건인 3개월에 맞추기도 어렵고 승선인원이 정해져 있어 힘들다”고 설명했다.

신제품 개발이 경쟁력인 전자 업계도 곤혹스럽다. 국내 주력 수출품인 스마트폰은 경쟁업체인 애플과 중국 화웨이의 새 폰 출시 시기를 따진 후 스케줄에 맞춰 제작해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다. 스케줄이 지연돼 출시 시기가 경쟁업체와 겹치면 마케팅 비용이 증가하고 판매량도 요동칠 수 있다. 전자 업체 관계자는 “신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성능 등을 맞춰 양산계획을 짜고 출시하는 데 보통 6개월이 걸린다”며 “현행 3개월 탄력근로에 맞추다 보면 개발과 출시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가전 업체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TV 등 핵심제품은 보통 1년 전부터 준비해 출시 4~5개월 전부터 세계 시장의 동향을 살피며 긴박하게 움직인다”며 “탄력근로시간이 늘어야 긴 호흡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더욱이 재계는 최근 일본과의 외교·경제적 갈등으로 주력산업의 탈(脫)일본화를 주문하는 정부가 일본보다 불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법정 근로시간이 주당 51.3시간으로 우리나라(52시간)와 유사한 수준이지만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1년간 운영할 수 있다.



대기업은 비용 부담에도 버티지만 내년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근로자 50인 이상~300인 미만 기업들은 제품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R&D 인력 규모가 작아 근로시간에 제약을 받게 되면 원청업체 납기에 맞춰 제때 제품을 개발하기가 한층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전자부품 업체 B사는 “신제품 하나를 만들려면 사내연구소 인력 10명이 몇 개월씩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며 “업무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탄력근로제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서플라이체인으로 묶여 있는 중소기업들은 원청의 개발 단계에 맞춰 부품을 생산하려면 집중근무가 불가피하다. 스마트폰 부품 업체의 한 임원은 “고객사 신제품 출시 납기에 맞춰 새로운 스펙(사양)으로 부품모듈을 개발하려면 고객사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집중적으로 단기간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인프라 시설 건설도 줄줄이 늦어지고 있다. 국내 여섯번째 고등검찰청인 수원고검 건물은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작업시간이 단축되며 계획보다 2개월 늦은 올해 3월 준공됐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건설공사의 44%가 공기 연장 위기를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의 발인 지하철 공사도 늦어지고 있다. 11개의 지하철 공사 중 9개, 14개의 철도 공사 중 11개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공기 지연 현상을 겪고 있다. 비용 부담도 만만찮다. 최은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사현장 37곳의 원가계산서를 분석한 결과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간접노무비가 평균 12.3%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도 국회는 서로 네 탓만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로 무역보복을 벌이는 상황에서 변형적 근로를 하는 데 국가가 너무 개입하면 안 된다”며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과 재량근로제에서 사용자가 업무지시를 못 하게 돼 있는 부분에 대해 유연성을 줘 노사의 자율성을 보장해주자는 것인데 더불어민주당은 논의한 바 없으니 못 하겠다고만 한다. 여당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회 환노위 소속 신창현 민주당 의원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 확대를 노사정이 합의했는데 그대로 입법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며 “탄력근로제로 물타기하면서 논의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박한신·민병권·진동영기자 hspark@sedaily.com

특별연장근로 확대 발의했지만...“유연근로 대체 한계”

재계 “고용부 인가 받기 어려워

주52시간 보완 입법될 수 없어

노사자율 선택근로제 확대 필요”



특별인가연장근로의 요건을 ‘재난’에서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사정’으로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선택형 시간근로제 정산기간 확대가 논란에 휘말린 상황에서 유연근로제 확대를 위한 우회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재계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으면 주 12시간 이상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 인가연장근로(53조 4항)의 요건에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사정으로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경우’를 추가하는 내용이다. 현행법은 특별인가연장근로의 요건을 ‘특별한 사정’으로만 규정하고 있고 정부는 시행규칙을 통해 “자연재해와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매우 좁게 해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인가 신청 건수는 78건이었고 이 중 35건만 인가되는 데 그쳤다.

재계가 확대를 요구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특별인가연장근로는 연장근로시간의 상한이 없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특히 재계가 주 52시간 근로제의 보완 입법적 성격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들고 나온 것은 물품 하자 등 통상적이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탄력근로제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탄력근로제는 연간 성수기가 뚜렷한 경우 활용하기 적절하게 설계돼 있다. 문제는 선택근로제가 애당초 유연한 근로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여서 노동계의 반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52시간 근로제의 도입은 과로 사회를 바꾸자는 취지인데 제도가 안착 되기 전에 유연근로제를 확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을 들고 나오는 건 합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로 문제도 특별인가연장근로의 경우 고용부의 인가를 거쳐야 해 자연스레 해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안에는 근무일 사이에 11시간의 휴식시간 보장안이 포함됐으며 근로시간 상한이 없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에도 이에 준하는 ‘건강권 보장안’이 들어가야 한다는 반론이 있었다. 다만 재계는 특별연장근로 확대가 주 52시간 근로제의 완전한 보완 입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특별연장근로의 경우 고용부의 인가를 거쳐야 하고 사후에 인가를 받기로 했더라도 인가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며 “노사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면 정부의 개입이 필요 없는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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