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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간다] 약사도 꺼린다는 항암제 직접 만들고 장애인 식사도 도와

<4>엔티로봇, 의료·복지로봇

◇병원용 '두팔케모'

사람 대신 독성노출 심한 약물조제

인력난 겪는 병원에 해결사 역할

양팔로 작업…사람보다 효율 높고

가격도 5억대로 외국산 대비 반값

◇헬스케어용 '케이밀'

한 팔로는 숟가락에 밥·반찬 얹고

다른 팔 이용 입으로 음식물 전달

조이스틱 장치 있어 조작도 간편

조제 로봇 ‘두팔케모’가 항암제를 만드는 모습. 원액 약물이 든 주사액을 오른팔로 잡고 왼팔이 든 수액백에 찔러 주입하려하고 있다./권욱기자






대형 의료기관인 A병원은 항암제 조제 수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암환자들이 점점 대형 병원으로 몰리면서 한때 하루 평균 300개 정도였던 항암제 조제 수요가 근래에 1,200개까지 늘었다. 정작 이를 만들 인력 운용이 어려웠다. 전문 약사들이 항암제 독성물질에 노출될까 봐 장시간의 조제 작업을 꺼렸다. 4~5교대 근무로 해도 못 견디고 일을 그만두는 약사들이 생겼다.

A병원과 같은 고충을 겪고 있다면 로봇이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다. 전문 약사처럼 정밀하게 항암제를 처방전대로 만들어주는 로봇들이 연구개발(R&D)되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일본 등에서 고가 제품을 사와야 해 비용 부담이 컸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해당 분야의 로봇이 제작되고 있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자리 잡은 엔티로봇(NT Robot)이 대표 주자다.

조제로봇 ‘두팔케모’가 항암제를 만드는 모습. 원액 약물이 든 약병을 왼팔로 잡아 저울에 올려놓고 정량이 맞는지 재고 있다. /권욱기자


엔티로봇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출신의 김경환 박사가 지난 2004년 창업한 한국의 1세대 로봇 기업이다. 원래 사명은 엔티리서치였다가 2015년 말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 국민의 정부 후반부부터 정부의 꾸준한 육성책에도 수많은 토종 로봇 개발사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져갔지만 엔티로봇은 15년간 풍파를 버텨냈다. 김 박사는 2017년까지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부친에게 대표 자리를 맡기고 자신은 기술 개발에 매진하기 위해 사내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본사를 찾은 본지 취재진에 김 고문은 병원용 로봇 ‘두팔케모(DUPAL-Chemo)’와 밥 먹여주는 헬스케어로봇 ‘케어밀(CareMeal)’ 등을 시연했다.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최초의 항암제 조제 로봇과 그 후속 외산 로봇들은 대부분 외팔이었다. 그만큼 조제가 느렸고 작업 종류에 제약이 있었다. 반면 두팔케모는 사람 상반신 모양의 몸체에 두 팔이 달린 로봇이다. 인간 약사 대비 85%의 능률로 작업 속도를 낸다. 24시간 작동하므로 전체적인 작업 효율은 휴식과 교대근무가 잦은 인간보다 높다.

가격은 5억원 선으로 정하려 한다는 것이 김 고문의 설명이다. 대당 보통 12억원대에 육박하는 이탈리아제를 비롯한 주요 외산 제품에 비하면 반값 이하다. 덕분에 국내 의료계의 관심을 사 몇몇 병원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엔티로봇은 임상 완료 후 연내에 상용화할 계획이다.

엔티로봇 창업자인 김경남 기술고문이 14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본사에서 멸균 캐비닛 안에 설치된 항암제 조제 로봇(오른쪽)의 동작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권욱기자




해당 로봇 본체는 앞면에 유리문이 달린 음압 캐비닛 내부에 설치된다. 바이러스·세균 등으로 오염된 외부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로봇과 캐비닛 내부는 철저히 멸균 상태로 유지되며 내부 공기도 천장의 헤파필터로 정화돼 배출된다.

일반적으로 항암제 조제 전문 약사들은 먼저 멸균복으로 갈아입고 밀폐된 멸균실로 들어간다. 이어 좁은 음압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에 많게는 1인당 수백 건씩 동일한 조제 작업을 반복해왔다. 그러다 보니 피로가 쌓이고 집중력이 떨어져 주사기에 찔리기도 하고 조제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나기도 한다. 주사기에 찔리거나 항암제용 원액 약물에 장기간 노출되면 독성으로 유전자 변이, 임산부 유산이 일어날 수 있다. 조제 실수는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

문제 해소를 위해 로봇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이탈리아산 등 기존의 외팔제품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약사의 작업을 한 손으로는 모두 따라 할 수 없었다. 결국 약병을 집어 정리하고 수액백을 흔들고 검사하는 작업을 로봇 옆에 별도의 주변 장비를 놓고 해야 했다. 반면 두팔케모는 두 팔로 인간의 동작을 거의 비슷하게 흉내 냈다. 시연을 보니 우선 트레이에 담겨 음압 캐비닛에 투입된 약병들과 주사기를 로봇팔이 집어 안쪽 반대편 벽에 달린 작업대에 종류별로 정리한다. 이어 전자처방전에 따라 약병(바이알)들에 주사기(시린지)를 꽂아 원액 약물들을 빼 수액백에 정확한 용량대로 거품이나 불순물이 생기지 않도록 정밀하게 주입했다. 이어 잘 흔들어 섞어줬다.

엔티로봇은 앞으로 항암제 조제 로봇에 인공지능(AI) 기술도 적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예정에 없던 절차로 약을 급하게 만들어야 할 때도 조제 프로그램을 일일이 새로 짤 필요 없이 로봇이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작업 과정을 창조해낸다.

이 같은 프로그램과 AI, 음압 캐비닛 등 전반적인 솔루션은 엔티로봇이 독자 개발했다. 제품의 약 70% 정도다. 로봇 본체 중 주요 부분을 비롯한 30%는 외산 제품 등을 도입해 제작했다. 아직 국내에는 멸균 로봇 제작을 위한 산업생태계가 없어 불가피하게 일본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항암제 조제 로봇의 높아질 증가세를 감안하면 전문 의약용 멸균 로봇 제조 생태계 기반 구축이 범국가적 민관 프로젝트로 추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엔티로봇 직원이 자사의 식사보조 로봇 ‘케어밀’을 시연하고 있다. 녹색의 집게 손이 달린 오른손이 식판에서 밥·반찬을 집어 왼손에 들린 숟가락 위에 얹어놓으면 왼팔이 숟가락으로 떠먹인다. /권욱기자


엔티로봇은 이날 지체장애인을 위해 식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식사보조 로봇도 소개했다. 소형 로봇팔 2개와 전원 공급, 구동 제어를 위한 본체로 이뤄졌다. 외팔이 주류인 외산과 달리 이 제품도 양팔로 구성돼 한 팔이 밥과 반찬을 집은 뒤 다른 팔이 들고 있는 숟가락에 얹어주면 숟가락을 집은 팔이 장애인의 입에 직접 음식물을 가져다준다. 조이스틱 형태의 조작 장치가 앉은 사람의 얼굴 높이에 있어 두 손을 쓰지 않고도 얼굴의 주요 부위로 누르듯 조이스틱을 조작할 수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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