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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몰랐던 '韓 초현실주의'를 소환하다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 展

김종남·김욱규·김종하·신영헌 등

국내 근대미술서 잊혀진 여섯 작가

드로잉 등 300여점 대중에 첫 공개

7월 6일까지 국립현대 덕수궁관서

김종남(마나베 히데오), ‘대치하는 풍경(1967)’.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후추시미술관 소장




빽빽하게 자란 날카로운 풀잎들 사이로 사마귀와 나비, 새, 그리고 정체불명의 동물들이 곳곳에 숨었다. 화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어두운 청록색 하늘에는 녹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낙하산이 둥실 떠 있다. 울창한 수풀 너머로 숨죽인 채 정면을 응시하는 작은 동물들과 눈에 띄게 화려한 패턴의 낙하산이 만들어내는 대치는 얼핏 평화로워 보이는 숲속 풍경에 불길하면서도 신비로운 긴장감을 부여한다.

비현실적인 꿈처럼 보이는 작품 ‘대치하는 풍경’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나 앙리 루소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작품은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간 뒤 줄곧 일본에서 활동한 근대 재일 화가 김종남(일본명 마나베 히데오·1914~1986)이 50대에 완성한 작품이다. 낯선 이름과 작품이지만 ‘아류’ 취급해서야 아쉽다. 김종남은 7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곤충과 식물 등 자연을 모티프로 하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꾸준히 그리며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했다. 다만 우리 미술사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민중미술과 추상미술 두 갈래로 발전해온 한국 화단에서 초현실주의는 지극히 비주류였던 탓이다. 그런 그의 작품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17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 전시를 통해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4전시실의 모습. 가운데 김영환의 ‘폐허의 오후(1973)’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김영환의 작품이, 왼쪽으로 신영헌의 작품이 내걸렸다.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는 20세기 한국 미술사에서 소홀히 다뤄진 근대미술 작가를 발굴한다는 취지의 ‘근대미술가의 재발견’의 두 번째 시리즈로 마련됐다.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절필했던 여섯 작가를 조명했던 2019년 기획전에 이어 6년 만에 열리는 전시는 ‘초현실주의’를 주제로 숨겨진 여섯 작가, 김종남·김욱규·김종하·신영헌·김영환·박광호를 호명한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도 평생 자신만의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탐험하고 완성한 작가들이다.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서유럽을 중심으로 부흥한 예술 사조다. 끔찍한 전쟁을 초래한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기 위해 비합리와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며 현실의 모순을 해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낯설고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초현실주의 화풍은 한국에서 인기가 없었다. 실제 이번 전시로 드로잉 및 자료를 포함해 총 300여 점이 공개되는데 상당수가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도 47점 공개되는데 이번에 액자를 새로 하거나 사진을 새로 찍은 작품이 대다수”라며 “전시나 대여가 거의 없었다는 뜻으로 그만큼 한국의 초현실주의에 무관심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욱규, ‘무제(1970년대)’.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유족 소장


인정받지 못한 예술은 종종 서글프다. 이들의 작품은 생전 ‘모방’으로 여겨졌고 사후에는 잊혔다. 일례로 김영환(1928~2011)의 초기 작품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저평가 받았다. 그러나 작가는 ‘불만스러운 현실을 뛰어넘어 이상을 향한 꿈을 표현하겠다’는 목표를 이어가며 기하학적 형상과 신화적 상상력으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한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우리나라에 아직 본격적인 초현실주의를 지향하는 예술가가 거의 없다시피 한 가운데 김영환은 거의 유일한 존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함흥 출신으로 월남한 김욱규(1911~1990)는 생전 화단과 교류하지 않았고 작품을 타인에 보여주는 일도 없었다. 두 평 남짓한 골방에서 그림만 그렸던 작가의 개인전은 그가 세상을 뜬지 1년 뒤인 1991년에야 ‘유작전’의 형태로 처음 열렸다. 400여 점에 이르는 작품에는 서명도 제목도 없다. 작가는 죽음을 앞두고 “모두 불태워 버려라”고 유언했지만 부친의 말을 어기고 작품을 소중히 보관해온 유족들 덕에 전시가 겨우 성사됐다.

김종하, ‘선인장(生,1977)’.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잊힌 작가라고 해서 무거워지거나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필요는 없다. 황금빛 모래 사막 한가운데 붉고 둥근 열매를 피운 뾰족한 선인장을 환상적인 분위기로 담아낸 김종하(1918~2011)의 ‘선인장(生)’이나 모호한 형태의 오브제로 무의식적 욕망을 표현하는 박광호(1932~2000)의 ‘결(結)’ ‘군(群)’ 연작 등은 ‘한국에도 이런 그림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작품들이다. 이중섭·이쾌대·천경자·곽인식·구본창 등의 작품에서 초현실주의 흔적이 발견되는 작품들만 추려내 구성한 1부 전시도 흥미롭다. 전시는 7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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