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한국을 각별히 여겼다. 취임 이후 첫 아시아 방문지로 한국을 찾았고 세월호 참사나 대형 화재 등 가슴 아픈 사고가 있을 때마다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북한이 초청한다면 기꺼이 방문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화해의 메시지도 끊임없이 보내며 한국을 위해 언제나 기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4박 5일간 방한하면서 한국인 모두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2013년 콘클라베로 선출된 지 1년 만에 해외 방문 국가로는 세 번째이자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이후 25년 만에 이뤄진 교황의 한국 방문이었다.
당시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 등 순교자 124위를 천주교 복자로 선포하는 시복미사 집전과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때 열린 시복식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세 번째였으나 직전 두 번은 모두 로마에서 열렸다. 교황이 직접 한국에 와서 진행한 시복식은 특별함을 더했다.
교황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장애인 등을 두루 보듬는 행보를 보이며 종교의 벽을 넘어선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교황은 성남 서울공항 도착 직후 마중 나온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 네 명의 손을 잡고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며 위로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받은 노란 배지는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의 왼쪽 가슴을 장식했다. 교황은 전세기를 타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배지를 떼지 않았다. 교황은 중립을 위해 배지를 뗄 것을 권유하는 목소리에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답하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
방한 기간 교황이 보여준 소탈함도 전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교황은 기아자동차의 1600㏄ 준중형 박스카 ‘쏘울’과 KTX를 이용하며 한국 곳곳을 찾았고 환호하는 시민들에게는 언제나 미소로 화답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거나 머리에 손을 올려 축복하는 등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놓지 않았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한반도 평화에 대해 논했고 남북·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될 때마다 평화 정착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교황청은 2022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 당국의 공식 초청만 있다면 북한 지역을 방문하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교황은 최근까지도 한국의 대형 재난·사고 때마다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난해 12월 무안국제공항 비행기 참사로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을 위로했고 최근 한국의 대형 산불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보냈다. 교황은 최근 전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신앙 대축제인 ‘세계청년대회(WYD)’의 차기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하면서 2027년 한국을 다시 찾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교황이 선종하면서 약속을 지키는 것은 후임 교황의 몫으로 남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소식에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전 세계 천주교인들과 함께 슬픔을 같이 하며 진심 어린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고 추모했다. 총리실은 이날 한 권한대행이 이같은 내용이 담긴 조전을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에게 발송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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