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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약자 옆에 선 '파더 호르헤'…부활절 다음날 떠났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유럽 벗어난 첫 남미 출신 교황

낡은 격식보다 인간성 본질 중시

동성애자 환대·이혼자 영성체 등

이슈놓고 교회 보수파와 갈등도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은 축복받을 수 있다. 이혼한 사람,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축복받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집필한 자서전 ‘희망’에 드러난 것처럼 그는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매번 거센 반대에 부닥쳤지만 끊임없이 개혁 작업을 추진해나갔다. 건강을 회복하는 듯 보였던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진 21일(현지 시간) 14억 가톨릭 신자를 비롯해 전 세계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인간과 지구를 위한 노고와 보살핌으로 고인은 수많은 이들의 삶에 깊은 감동을 줬다”며 추모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교황의 속명)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철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이민 가정의 장남으로 자란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문과 신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때 아버지가 회계 업무를 봐주던 양말 공장에서 청소와 사무 보조로 일했다. 공업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오전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식품 화학을 공부했다. 화학자가 되기를 꿈꿨던 그는 친구들과 같이 간 교회에서 고해성사를 하던 중 신의 부름을 받고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7세 때다. 성직자로서는 다소 늦은 나이인 22세에 예수회에 입회했으며 이후 신학·철학·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69년 12월 13일 사제로 서품된 후 그는 아르헨티나 내에서 주교와 대주교로서 사목에 매진했다. 경제위기와 사회 불평등에 맞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교계에서 그는 ‘겸손과 청빈’의 상징으로 통했다. 2001년 추기경에 선출된 직후에도 로마행 비행기를 타는 대신 국가 부도(디폴트)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 빈민을 위해 비행기 삯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 건강상의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자 같은 해 266대 교황에 선출됐다. 당시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에서 다섯 번 끝에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자 예수회 출신, 비유럽권 인사, 그리고 프란치스코라는 즉위명을 처음 사용한 교황으로 수많은 ‘최초’ 기록을 세웠다. 프란치스코는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인의 이름이다.

즉위 이후에는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개혁을 밀어붙였다. 평신도 참여 확대, 동성애자와 이혼·재혼자에 대한 포용, 성직자의 독신 의무 완화 등으로 교황청 내 보수 세력과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그러면서도 ‘포용하는 교회’를 강조하며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했다. 동성 결혼 합법화에는 반대했지만 이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2023년 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전환자도 다 같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등 개혁적 시각을 견지했다. 그러면서도 교회의 잘못된 과거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가톨릭의 식민 지배 가담과 사제의 성추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교황청은 2021년 6월 미성년자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의 처벌을 명문화하는 등 38년 만에 교회법을 개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가 쇠퇴하는 가운데 교황 즉위 이후 가톨릭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그의 파격 행보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제 무대에서도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 중재자로 나섰고 2021년에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이라크를 방문했다. 그 외에도 미얀마, 북마케도니아,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남수단 등 교황 역사상 처음으로 방문한 국가가 다수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발발한 이래 교황은 끊임없이 평화의 목소리를 냈으며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을 두고도 민간인 희생을 막고 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교황이 선종 전 마지막 공개 활동에서 남긴 메시지도 평화였다. 그는 부활절인 20일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이 대독한 부활절 메시지에서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거듭 촉구했다. 교황은 또 “종교와 사상,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견해에 대한 존중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며 “전쟁 당사자들에게 휴전을 촉구하고 인질을 석방해 평화의 미래를 열망하는 굶주린 이를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활절 야외 미사 후반에 성베드로 대성전 2층 중앙 ‘강복의 발코니’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운집한 신자와 순례자를 향해 “형제자매 여러분, 행복한 부활절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끔찍한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이루자는 이번 부활절 메시지는 교황의 마지막 유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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