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운반차(AGV) 382대가 쉴 새 없이 보닛·문짝 등 차체를 운반한다. 옮겨진 차체는 823개의 대형 용접 로봇이 불꽃을 튀며 자동차 뼈대로 만든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부품이 담긴 상자에서 다음 작업에 필요한 부품들을 따로 찾아내 옮겨 놓는다. 완성된 차량의 외관을 점검한 뒤 마지막으로 보닛에 지커 엠블럼을 장착해 마무리한다.
이달 23일부터 열리는 상하이모터쇼를 앞두고 18일 국내 언론 최초로 기자가 찾은 중국 저장성 닝보의 지커 공장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해 휴머노이드 로봇 등 최첨단 기술의 향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커는 2021년 중국 지리자동차그룹이 설립한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로, 닝보의 지커 공장은 중국 내에서도 최첨단 자동차 공장으로 손꼽힌다.
가장 먼저 지리자동차가 자체 개발한 SEA(전기차 전용 플랫폼)를 기반으로 차체를 만드는 공정이 눈길을 끌었다. 지리·지커는 물론 지리가 인수한 볼보 등은 모두 SEA 플랫폼 위에 배터리팩·전기모터 등 파워트레인을 모듈화해 결합하고 전장장비 등을 더한 뒤 보디 부분과 타이어 등을 결합해 완성차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차량의 안전성, 공간 활용도, 안정적 주행 성능을 높일 수 있고 지리 계열사의 원가 경쟁력 확보도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닝보 공장에서는 4종의 주력 모델이 SEA 플랫폼 하나로 완성된다. 차체를 만드는 용접 라인의 자동화율은 100%를 자랑한다. 사람의 손을 전혀 빌리지 않고 로봇만으로 용접 공정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손가락만큼 작은 부품부터 전기차의 핵심이 되는 배터리까지 크고 작은 로봇 팔을 이용해 조립한다. 타이어를 조립하는 로봇은 한 번에 다섯 개의 나사를 동시에 조이는 ‘장기’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바닥에서 올라온 배터리팩을 포함한 차체 하부와 위에서 내려온 나머지 뼈대는 10여 개의 연결 부분이 한 치에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져 프리미엄 전기차의 유려한 자태를 드러냈다.
생산 라인의 전체 자동화율이 90%를 넘다 보니 몇 명 안 되는 직원들이 모니터로 지켜보며 전체 공정을 관리했다. 총 5단계의 품질 검사 프로세스와 3000개 이상의 검사 항목도 디지털 기기로 완벽하게 해결했다. 2021년 하반기부터 가동된 이 공장은 5G 기술이 접목된 지능형 제조 라인으로, 생산에서 출고까지 인간의 개입은 최소한에 그친다. AI를 비롯해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공장인 만큼 자동차 업종이 아닌 기업들까지 미래형 공장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
지커 닝보 공장은 휴머노이드 로봇 활용을 염두에 두고 로봇 전문업체인 유비테크에 자체 훈련 기회도 제공했다. 실제로 휴머노이드 로봇 ‘워커 S1’을 세계 최초로 닝보 공장에 투입해 화제를 모았다. 키 172㎝, 무게 76㎏으로 성인 남성의 체형과 유사한 로봇들은 무인운반차, 무인지게차, 산업용 제작 로봇 등과 함께 ‘인간 없는 공장’으로의 구현 가능성을 시험했다. 워커 S1은 양쪽 귀에 달린 파노라마 카메라를 통해 주변 환경과 작업 범위를 360도 인식하고 양손으로 15㎏ 중량의 물체도 옮길 수 있다. 닝보 공장에 시험 투입된 워커 S1은 부품이 담긴 상자에서 다음 작업에 필요한 부품들을 분류해 옮기는 일을 도왔다. AI를 활용해 완성차의 외관에 문제가 없는지 최종 점검하고 보닛에 지커 엠블럼을 장착하기도 했다. 완성된 전기차의 충전도 로봇 직원의 역할이었다. 유비테크는 반복 작업이 가능하도록 입력된 프로그램을 통해 오류가 발생하는지 로봇들을 훈련시킬 수 있었고, 지커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한 생산 자동화를 시험할 수 있었다. 지커 관계자는 “로봇은 반복 작업이 가능해지면 인간처럼 실수하는 일이 거의 없어질 것”이라며 “머지않은 미래에 닝보 공장에서도 휴머노이드 로봇 직원이 일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닝보 공장에서는 지커의 주력 모델인 왜건형 모델 ‘001’과 미니밴 ‘009’를 생산하고 있다. 전시관 한편에는 지커의 협력사인 엔비디아(차량용 반도체), 알칸타라(가죽 내장재), 컨티넨탈(타이어), CATL(닝더스다이·배터리), 마그나(전장장치), 보쉬(서스펜션), 만도(조향장치) 등의 이름이 걸려 있다. 출고된 제품은 물동량 기준 중국 2위(세계 4위)인 닝보항을 비롯해 세계 1위 상하이항, 광저우항 등으로 보내져 유럽·동남아시아 등으로 수출된다.
올 1월 판매를 시작한 비야디(BYD)에 이어 한국 시장 진출을 예고한 지커는 다른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생산 시설 공개를 꺼리는 것과 달리 기자에게 공장 내부 곳곳을 상세히 공개했다. 사진이나 영상 촬영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비야디가 가성비를 앞세웠다면 지커는 고급 전기차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올 2월 법인 설립을 완료했고 딜러사 선정에도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7X의 상표가 출원돼 첫 모델로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지커 관계자는 “올해 안에 정확한 한국 진출 시점이 발표될 것”이라고 알렸다. 다른 관계자는 이르면 연내에도 한국 진출이 가능할 수 있다며 영문명(Zeekr)에 KR을 가리켰다. 지커는 지리자동차의 계열사를 통해 국내 시장에 더욱 빠르게 정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볼보와 폴스타 모두 국내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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