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검찰청의 미제 사건 숫자가 지난달 기준 누적 10만 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형사부 검사실에만 미제 사건이 지난달 700건까지 쌓이는 등 미해결 상태의 민생 사건이 쏟아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수사하는 3대 특별검사팀(내란·김건희·순직해병 특검)으로 파견 간 검사들의 빈자리가 길어지고 검찰 개혁의 여파에 사직하는 검사들도 늘어나며 일선 청은 사실상 업무 마비 사태로 치닫고 있다.
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8월 검찰 미제 사건은 9만 5730건으로, 지난달 10만 건을 돌파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각 특검팀이 수사를 개시하기 직전인 5월 전국 검찰청의 미제 사건은 6만 5067건을 기록했는데 이후 매월 1만 건 안팎의 미제가 누적되며 빠른 속도로 미처리 사건이 쌓이고 있다.
서울중앙·동부·남부·서부지검과 수원·인천지검 등 수도권 검찰청 내 형사부의 미제 사건도 검사당 300건 안팎인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수원지검의 경우 지난달 중순 기준 한 검사실에만 미제 사건이 700건이나 몰리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통상 검사 한 명당 미제 사건이 100건가량 있으면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평가된다. 일선 검찰청의 검사들은 주어진 사건을 두고 압수수색이나 피의자 조사, 구속영장 청구 등 짜여진 일정에 따라 수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최근 특검 파견 등 검사 인력난이 심화되고 일선 청의 재배당 사건이 형사부 검사들에게 쏟아지면서 기존에 수사하던 사건을 처분하는 업무도 꼬이고 있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형사부 부장검사는 “과거에는 미제 사건이 월말 기준 50건만 있어도 지휘부에서 빨리 처리하라는 압박이 있었는데 현재는 100건도 적은 편”이라고 털어놓았다. 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도 “지난해부터 수사하고 있는 다중 피해 사건의 경우 검사뿐 아니라 수사관들도 특검에 파견을 나가 방대한 분량의 계좌 분석을 할 인력이 없어 수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사기나 폭행·성범죄·보이스피싱 같은 민생 사건이 빠르게 쌓이고 있는 것은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수사하는 3대 특검의 영향이 크다. 내란 특검팀에는 현재 56명의 검사가 파견됐다. 김건희 특검팀과 순직해병 특검팀도 각각 40명, 14명이 합류해 있다. 최근 3대 특검법 개정안에 따르면 내란 특검팀에는 검사 10명이 증원될 수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순직해병 특검팀에도 각각 30명, 10명까지 추가로 검사들이 파견될 수 있게 됐다. 이날 순직해병 특검팀은 검찰 등에 추가 인력 파견을 요청했다. 특검법 개정안에 맞춘 검사 정원은 170명으로, 공판검사를 제외하면 서울중앙지검의 전체 검사들이 통째로 사라진 것과 비슷하다.
미제 사건 처리가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일선 청의 형사부 검사들은 아우성치고 있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검사는 “정치권에서 지적하는 ‘특수 사건’은 비중이 극소수”라며 “지난해 대학병원 전공의들 사례처럼 검찰은 민생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부 검사들을 시쳇말로 갈아 넣어서 유지되는 체제인데 최근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동시에 업무가 쏟아지니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건희 특검팀 내 검사들도 지난달 30일 “현재 (특검에서) 진행 중인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한 후 파견 검사들이 일선으로 복귀해 폭증하고 있는 민생 사건 미제 처리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대검은 특검 파견 검사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대검 소속 연구관 등을 일선 청으로 지원 보내는 등 단기적인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대검은 지난달부터 대검 전담 연구관을 일선 청에 파견을 보내 수사 지원을 시작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검 연구관들은 중앙지검 형사부로 아예 출근을 하며 미제 사건 처리를 위해 직접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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