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작업을 본격화 한다. 정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위해 전국에 분포한 거점국립대를 수도권 대학과 차별화된 이른바 ‘특성화연구대학’으로 만들기로 했다. 거점국립대에 우수 인재를 대거 유치하고 궁극적으로 지역의 경제·산업 역량을 끌어올려 균형 발전을 이룬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4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한편 우수 교원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과 규제 특례 등의 패키지 정책을 마련했다.
다만 교육계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이 지방 거점국립대 경쟁력 제고보다는 국가 균형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대학별 ‘예산 나눠 먹기식’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국내 1위 서울대를 글로벌 우수 대학으로 만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도 만만찮다.무엇보다 이 같은 정부 로드맵이 현실화 되기 위해서는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조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가뜩이나 미국와의 관세 문제 등으로 기업의 경영불확실성이 높아진 와중에 이 같은 교육부 방안에 기업들이 협업할 지 여부는 미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9월 30일 지방 거점국립대 총장 간담회를 열고 “9개 지방 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지방대학 경쟁력을 제고하고 지역 곳곳에 우수 대학을 육성하겠다”며 “이를 통해 수도권 중심의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는 한편 국가 균형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번에 공개한 거점국립대 육성책의 핵심은 ‘특성화연구대학’ 수립으로 요약된다. 교육부는 대학별로 ‘5극3특 성장 엔진’ 전략산업과 관련된 특성화 분야 학부·대학원·연구소를 하나의 독립 패키지로 육성해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5극 3특 전략’은 전국을 수도권, 동남권(부산·울산·경남), 대경권(대구·경북), 중부권(대전·충청), 호남권(광주·전남) 등 5개 권역과 제주, 강원, 전북 등 3개 특별자치도로 나눠 권역별 성장 거점 육성을 위한 로드맵이다.
특성화연구대학 수립 전략은 거점국립대 학부에서 양성된 현장 실무형 인재가 거점국립대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 기업과 출연연이 연계돼 설립된 특성화 연구소에서 이들과 공동 연구 등을 진행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특성화 연구소는 기술 검증, 제품화 연구, 인증 평가 기업 위탁 연구 등을 담당하며 특성화연구대학 대학원생 대상의 교육 또한 맡아 거점국립대 육성 전략의 핵심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는 거점국립대와 출연연 및 기업 간 협력에 기반한 ‘미래융합대학원’ 외에 집적화된 ‘융합기술원’ 등을 구축해 거점국립대의 연구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우수 교원 확보를 위한 정책도 마련했다. 대학 교원이 산업체 직원을 겸직할 경우 근무시간과 보수 등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교원 확보에 나서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제 교육부가 예시로 든 서울대의 경우 겸직 교원으로 임용한 구글 리서치 엔지니어의 근무시간을 나눠 낮에는 서울대 교수로, 밤에는 구글 직원으로 각각 근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기업과 손잡고 ‘채용연계형 계약학과’ 확대에도 나선다. 성균관대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가고 싶은 지방 대학’의 첫 번째 요건으로 ‘안정된 취업과 진로 보장의 통로가 되는 대학’을 꼽은 만큼 안정적 일자리 확보가 거점국립대 인재 유치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학부 교육 또한 시장 수요에 맞게 대거 개편한다. 기본 커리큘럼에 인공지능(AI) 기본 교육을 넣는 한편 해외 우수 대학과의 학점 교류 및 공동·복수학위제, 글로벌 인턴십 등 글로벌 학습 경험 기회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여타 지방대학과의 공동 성장을 위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RISE)’ 체계를 활용해 거점국립대의 교육과정과 연구 장비 및 인프라 등을 인근 지방대와 공유하도록 했다.
다만 나눠 먹기식 예산 분배로 대학이 우수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 소재 주요 사립대 총장을 역임한 A 씨는 “정부가 이야기하는 이른바 ‘서울대 10개’의 의미가 학부생들이 진학하고 싶어 하는 대학인지, 서울대만큼의 지역 내 영향력을 가진 대학인지, 대한민국을 이끌 연구 성과를 낼 대학인지 여부조차 명확하지 않다”며 “이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비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했다는 지적이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립대 총장은 “현재 서울대조차 글로벌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주요 대학들을 세계 대학들과 경쟁할 국제적인 대학으로 육성하는 정부 차원의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계가 이 같은 정부 정책에 얼마나 협조할 지 여부도 미지수다. 각종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기업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되는 와중에 지방대학 육성에 나설 기업 대상 인센티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산업통상부와 협업해 지역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방침이지만 교육부 장관의 ‘부총리’ 역할이 사라진 상황에서 얼마만큼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 지 물음표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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