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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명분의 덫에 빠진 금융 정책

이승배 금융부 기자


“은행이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를 요구받는 건 사실이죠.”

금융 당국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정책의 모순을 꼬집었다. 금리 하락 국면에서 가계대출은 억제하면서도 예대금리 차는 벌어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생산적 금융’ 기조에 발맞춰 기업 금융을 늘리되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에는 깐깐한 대출 심사로 페널티도 줘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을 맞닥뜨린 시장의 우려는 난제 풀기의 어려움을 넘어선다. 반대하기 어려운 명분을 앞세워 금융시장의 기본 원칙까지 흔들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은 ‘서민 부담 완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시장금리 제한이나 고신용자에 비용 전가와 같은 전례 없는 정책을 공언하고 있다.

문제는 선한 의도가 결과적 정의로움까지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은행의 본질은 차주들의 신용 수준에 맞게 자금을 배분하는 일에 있다. 여신 심사 과정에서 비재무적 요소를 늘리거나 고신용 차주에게 부담을 떠넘겨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방식은 금융사의 자금 공급 규모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 의도와 달리 취약층의 차입 기회 자체를 축소시킬 수 있는 셈이다.

위험 시그널은 이미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6·27 대출 규제 시행 직후 2주간 대부 업계의 신용대출 신청이 85%나 급증했고 8월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는 6월 대비 40% 늘었다. 2금융권에서도 거절당한 취약층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렸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약자를 위한 착한 정책이 외려 해만 끼친 사례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세입자 권한을 강화한다며 시행한 ‘임대차 3법’은 전셋값 상승과 갭투자를 부추겼고 깡통전세 위기를 불렀다. 법정 최고 금리 인하는 3만 8000명을 불법 사금융으로 몰아넣었다.

정부의 역할은 정의로운 정책을 관철하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고 뒤탈 없이 완수하는 데서 정권의 실력이 드러난다. 금융이 명분에 잠식될 때 먼저 타격을 입는 건 서민의 삶이라는 점을 우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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