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가 전산망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며 2022년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일으킨 운영 관리 도구 이중화 공백이 행정부 버전으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 정부는 재해·재난뿐 아니라 장애 상황에서도 작동하도록 ‘액티브-액티브(Active-Active)’ 방식의 재난복구(DR)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2년이 지난 현재 예산 부족으로 시범 사업에 착수하는 데 그치며 ‘예견된 사고’였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고 있다.
28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대전 국정자원 화재로 직접 피해를 본 국가 정보 업무 시스템은 96개다. 정부는 대전 본원보다 복구가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국가 정보 업무 시스템을 대구 분원 내 민관 협력형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전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전소된 환경에서 복구보다 이전 재설치가 복구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번 국정자원 사고는 3년 전 경기 판교 SK C&C의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카카오톡이 셧다운된 것과 유사하다. 당시 데이터센터 전기실 내부의 배터리에서 불이 나 전체 전원이 차단돼 입주 기업 카카오의 카카오톡 등 서비스가 일제히 중단됐다. 사고 이후 정부는 민간기업에 DR·이중화 의무를 법으로 강제했고,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을 개정해 데이터센터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주기적인 관리·감독을 받도록 했다.
2년 전에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행정 전산망에 오류가 발생하며 사흘간 각종 증명서 발급이 중단되는 행정망 먹통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후 정부는 업무 연속성을 고려해 국정자원 업무를 화재가 발생한 대전 본원을 비롯해 대구·광주 분원 등 3곳에서 1600여 개 국가 정보 업무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현재 가동이 중단된 국가 정보 업무 시스템은 647개로 대전 본원에 속해 있다.
정부는 두 차례의 사고를 겪으며 DR 시스템을 본격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재난 상황 발생 시 복구할 수 있는 DR 시스템에는 서버 DR과 클라우드 DR이 있다. 클라우드 DR이 갖춰졌다면 화재·홍수·폭격 등 예기치 못한 상황에 한곳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중화를 통해 다른 곳에서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정부가 추진했던 ‘액티브-액티브’ 형식의 DR은 2개의 서버가 동시에 가동되는 방식이다. 기존에 하나의 서버가 대기 상태에 있는 ‘액티브-스탠바이’보다 신속한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게 경쟁력이다.
하지만 2년이 지났음에도 예산 부족 탓에 국정자원 전산실 내 클라우드 DR 환경은 구축이 완료되지 않았다. 이는 같은 데이터를 여러 곳에 복제해 보관하는 이중화 조치가 미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카오는 먹통 사태 이후 재난 복구 시스템을 데이터센터 3개가 연동되는 삼중화 이상으로 고도화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전산실에 불이 나더라도 정부 시스템은 먹통이 되지 않아야 하는 게 원칙”이라며 “화재로 카카오톡이 마비되자 정부는 민간기업인 카카오에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정작 정부는 지시를 지키지 않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전 본원은 공주 센터와 이중화하는 작업이 계획됐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진척이 늦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2005년 설립된 대전 본원은 건축 연한이 20년 이상으로 노후화 문제를 겪고 있을 뿐 아니라 백업 서버가 한 건물에 있어 화재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행안부의 한 관계자는 “12월까지 대전에 액티브-액티브 형식의 DR이 적용된 통합운영관리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작업에 착수했다”며 “현재 예산이 확보된 상태고, 시범사업 이후 정부 부처 등 입주 기관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 이중화 체계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서비스부터 복구에 나설 계획이다. 대국민 서비스는 업무 영향도와 사용자 수, 서비스 파급 정도를 합산해 1~4등급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90점 이상이면 1등급, 85점 이상이면 2등급으로 나뉜다. 주민등록등본 발급, 세금 계산 등은 1·2등급에 속한다. 1등급 시스템 약 250개는 노후 장비 교체, 이중화 적용 등의 예산을 우선 편성하기도 했다. 김민재 행안부 차관은 “이번 장애로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큰 불편을 겪으신 데 대해 거듭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장애를 신속히 복구하고 상황이 안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후 복구 경과와 대응 계획도 빠른 시일 내에 상세히 말씀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