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에게 관세 협상이 “양국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미 측의 무리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의 요구대로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할 경우 외환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직접 표명한 것이다. 대통령실에서는 유관 부처에서 연이어 미국에 이 같은 입장을 전달하고 있는 만큼 이번 접견이 긍정적 결과를 갖고 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통화스와프에 대해서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라며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베선트 장관을 만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달 워싱턴DC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접견한 후 약 한 달 만이다. 당초 베선트 장관은 25일 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한민국 투자 써밋’ 연사로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참석이 어려워지면서 이 대통령을 따로 접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먼저 “한미 관계는 동맹으로서 매우 중요하며 안보뿐 아니라 경제 측면에서도 양국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동맹의 유지와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보 측면 협력이 (협의가) 잘 진행되고 있는데 통상 분야에서도 좋은 협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베선트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한국이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조선 분야에서 한국이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한 바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에서 “상업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직접투자하라는 미국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직접 밝힌 것이다. 특히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크고 외환보유액도 더 많다는 사실을 들어 미국 요구의 불합리성을 적극 피력했다.
베선트 장관은 이 대통령의 입장을 내부에 잘 전달하겠다는 정도의 대답에 그쳤지만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번 접견으로 의미 있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규모 직접투자 요구에 맞서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 통화스와프 체결 없이 미 요구를 수용하면 외환시장에 닥칠 중대 위기에 대해 주무 장관인 베선트에 직접 설명했기 때문이다. 지난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의 면담을 통해 베선트 장관이 해당 내용을 인지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직접 포인트를 집어 당부한 사항인 만큼 미국도 마냥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통화스와프에 대해서는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협상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김 실장은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필요조건”이라며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 체결되더라도 추가 논의를 많이 거쳐야 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투자 규모가) 우리나라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여야 하고 필요하면 수출입은행법을 고치거나 중요한 부담이라면 국회 보증 동의도 받아야 한다”며 이것이 충분조건이라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최소한 그에 대한 미국의 해답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통화스와프를 말한 것이고 충분조건까지 다 갖춰져야 어떤 사업에 얼마를 투자할 것이냐를 논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익이 발생하기 전까지 수익을 한국과 미국이 9대1로 나누자는 등 우리가 국익에 맞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김 실장은 “상업적 합리성에 맞고 우리가 감내 가능하고 국익에 부합하며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협상 중”이라며 “시한 때문에 그런 원칙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 측의 쌀·소고기 시장 개방 압박을 두고서는 “우리 레드라인이라고 말하는 쌀과 소고기 부분에 대한 논의 자체를 깊게 할 수 없다는 쪽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무역 분야 비관세장벽에 실질적 진전에도 그 내용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한미 관세 협상의 시한과 관련해서는 “데드라인을 따로 두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간 한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협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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