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 도중 폭탄 발언을 던졌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영 위기를 겪었을 때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에 대해 정부가 지분을 취득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는 엄포로만 그쳤다. 하지만 올해 출범한 2기 행정부는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에 재정·세제 지원, 규제 완화나 강화를 내세워 지분을 정부에 넘기라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기업 쇼핑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로이터통신은 24일 미국 에너지부가 캐나다계 자원 개발 기업인 리튬아메리카스의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리튬아메리카스는 미국 네바다주에 서방권 최대 리튬 매장지인 ‘서커패스 광산’을 개발할 계획인데 트럼프 정부가 22억 달러가량의 사업 자금으로 빌려주는 대신 회사 지분의 10%를 요구했다고 한다. 8월에는 미 국방부가 자국 희토류 개발사 MP머티리얼스로부터 최대 15%로 추정되는 주식을 받는 대신 4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도 지난달 반도체지원법인 ‘칩스법’에 따라 88억 70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는 대가로 보통주 약 10%를 정부에 넘기기로 했다.
이 같은 정책을 설계한 인물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다. 그는 미국에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자한 기업들에 대한 지원 및 규제를 전담하는 상무부 조직인 ‘미국 투자 액셀러레이터’ 창설을 주도해 3월 출범시켰다. 이 조직을 실무진으로 삼아 민간기업의 대미 투자를 압박하거나 지분 인수 등을 추진해왔다. 주요 전략 산업에 대한 미국의 독자적 공급망을 구축해 중국을 견제하고 수익을 창출해 국가 부채 상환 재원을 마련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 등 야당에서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와 정책 기조는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대미 투자에 나설 때 미국 측의 무리한 지분 요구에 노출되지 않도록 정교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기업들은 미국 외 국가로 시장 진출을 다변화해 트럼프 정부의 압박 리스크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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