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첨단반도체 분야에서 일본 투자 확대 의욕을 나타내며 한국과 일본의 인공지능(AI)·반도체 협력 강화 등 경제 공동체 구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22일 요미우리신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AI가 확산하며 데이터센터 등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이 분야에 강점을 지닌 한국과 일본에 큰 성장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은 이미 일본 NTT의 차세대 통신 인프라 ‘IOWN’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협력 사례가 있다. 최 회장은 “일본에 투자할 의지는 분명하다”고 밝히면서도 미국의 관세 정책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줄어들 필요가 있다”고 말해 투자 결정에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공동체' 구축 구상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유럽연합(EU)을 예로 들며 한일 경제공동체 구축 시 경제안보와 국제사회에서의 발언력 강화를 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일간 교역량이 과거와 비교해 크게 늘었지만, 앞으로는 무역만으로 함께 성장하기 어렵다는 게 최 회장의 지적이다. 그는 "(경제 공동체 구축으로) 사회적 비용이나 경제 안보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표준을 주도하는 룰 세터(rule setter)가 되는 등 시너지가 생긴다"며 “미국, EU, 중국에 이어 세계 4위의 경제권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한국 정부가 가입 검토를 표명한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해서는 "그것도 좋지만, 일본과는 느슨한 경제 연대가 아닌, EU 같은 완전한 경제통합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 일본 총리는 지난 8월 23일 정상회담에서 AI 등 '미래산업 분야' 협력 확대에 합의했다. 최 회장은 "민간 차원의 협력이 국가 차원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일 기업 간 협력 기회 모색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 달 말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최 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는 참가국·지역 경제계 대표들이 모이는 최고경영자(CEO) 서밋을 연다. 최 회장은 "한일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 협력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 개최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요미우리는 중국이 주요국을 상대로 '경제적 위압'을 강화하는 가운데 한일 양국의 협력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에너지와 핵심 물자 공급망을 강화해 한미일 안보협력의 뒷받침이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제공동체 구축을 위해 역사나 영토 문제를 둘러싼 서로의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최 회장은 AI와 관련한 반도체 시장에 대한 개인적인 전망도 내놓았다. 최 회장은 “광대역메모리(HBM)만 보면서 AI의 세계를 말할 수는 없다”면서 “AI 데이터센터에서 쓰는 메모리 반도체를 총칭해 'AI 반도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대화형 AI 서비스가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자율형) 에이전트 단계로 진화하면 더 많은 메모리가 필요하고, AI 생태계 활동도 늘어날 것”이라며 “HBM뿐 아니라 AI 액셀러레이터 시장도 확대될 것이고, AI 데이터센터 투자도 더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의 낸드플래시 생산업체이자 SK그룹이 투자한 키옥시아와의 협업 의사도 강하게 내비쳤다. 최 회장은 “지금은 미국 투자펀드 베인캐피털을 통해 간접 출자하는 상황이라 직접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키옥시아가 일본 증시 상장도 잘 돼 기업 가치가 오르고 있어 구도가 바뀌면 좀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15일 최 회장이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를 방문했을 때 진행됐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