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약은 단연 비만 치료제 ‘위고비’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 위고비로만 약 80억 달러(약 11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은 약 58조 3000억 원, 영업이익은 약 26조 원을 기록했다. 올해 설립 102주년을 맞은 노보노디스크는 1920년대부터 당뇨 치료제 ‘인슐린’ 개발에 집중해왔다. 현재 인슐린 세계 1위 제조사로 전 세계 시장의 5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덴마크 국가 수출액의 40%가량을 책임지고 있어 ‘덴마크의 삼성전자’로도 불린다.
위고비는 지난해 10월 국내에도 출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출시 후 올 6월까지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한 처방전 수는 총 39만 5379건에 달했다. 시장조사 기관 아이큐비아 기준으로 올 2분기 국내 전문 의약품 매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캐스퍼 로세유 포울센 한국노보노디스크제약 대표는 이달 18일 국내 제약 기업 종근당과 국내 공동 판매 계약을 발표하면서 “위고비는 비만의 복합적인 역학적 문제를 인식하고 25년 넘는 연구를 거쳐 개발한 혁신적 치료제”라고 소개했다. 위고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위고비의 시작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0여 년간 당뇨를 비롯한 만성질환 치료제 개발에 몰두해온 노보노디스크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성분을 활용한 새 당뇨 치료제 개발에 들어갔다. 연구 과정에서 이 성분이 비만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함께 개발을 진행하기로 했다. 오랜 연구와 임상 끝에 비만 치료제 ‘삭센다’가 2015년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매일 1회 주사를 맞아야 하는 삭센다의 불편을 개선해 주 1회 주사를 맞아도 효과를 내는 위고비를 개발해 2021년 6월 미 FDA 승인을 받았다. 현재는 주사가 아닌 ‘먹는 위고비’를 개발해 미 FDA 허가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먹는 위고비’가 내년에 허가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우리는 위고비 같은 약을 만들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단기간에는 어렵다. 가장 높게 보이는 ‘절벽’은 글로벌 빅파마들과의 체급 차이다. 신약 개발은 수천억 원의 개발 자금이 투입되는 ‘머니 게임’이다. 충분한 총알과 실패를 이겨낼 맷집이 없으면 판에 낄 수 없다. 우리 제약 업계는 지난해에야 첫 매출 2조 기업(유한양행)을 배출했다. 위고비 한 품목 매출의 5분의 1, 노보노디스크 전체 매출의 3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 제약사인 존슨앤드존슨(J&J)의 지난해 매출은 약 128조 5000억 원이었고 연 매출이 수십조 원을 넘어서는 빅파마는 로슈·머크·화이자 등 즐비하다. 게다가 글로벌 빅파마들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특허 소송, 인수합병(M&A), 가격 인하, 정책 로비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견제구를 던진다. 그야말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다.
이재명 정부는 최근 ‘K바이오 혁신 간담회’를 열고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간담회에서는 인재 육성, 혁신 기술 적용, 자금 지원, 규제 완화 등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됐다.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바이오 산업 육성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업계에 오랜 기간 몸담은 관계자들은 “제약·바이오 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한 번에 앞서갈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R&D) 단계별로 자금·인력·노하우 등이 선순환하는 K바이오 생태계 구축이라고 지적한다.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을 치르려면 정부 차원에서 K바이오의 ‘도전’이 화수분처럼 이어질 수 있는 구조 구축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골리앗들도 신약을 개발하는 데 20~30년의 시간과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한다. 다윗은 그보다 더 오랜 기간 작은 돌멩이를 계속 던지면서 기회를 엿봐야 한다. 쉬지 않고 돌멩이를 던지다 보면 근육이 커지고 적중률도 높아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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