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행정가형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각과 참모 인사, 추가경정예산 처리, 부동산 대책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성과와 빠른 속도를 중시하는 국정운영이 돋보인다. 소년공 출신으로 변호사로 성장해 성남시장, 경기지사,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문제 해결 능력과 정무 감각을 함께 장착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만기친람과 포퓰리즘 부작용을 우려한다. 물론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답답한 고구마를 워낙 많이 먹었던 국민 입장에서는 정권 교체의 효능감을 더 크게 느끼는 듯하다.
쾌도난마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이 대통령도 풀기 어렵다고 고백한 현안이 있다. 바로 의정 갈등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30일을 기념해 3일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의정 갈등 해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여러 국가적 현안에 대해 고심했는데, 제일 자신 없는 분야가 의료 사태였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은 1년 5개월 동안 대화와 타협 없는 평행선을 달리며 꼬일 대로 꼬여버린 ‘난제’가 됐다. 다만 이 대통령은 갈등 장기화의 원인을 “전 정부의 억지스러운 정책과 일방적 강행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의료 시스템을 망가뜨렸다”고 진단하고 “정부가 바뀌면서 긴장감·불신이 조금은 완화된 것 같다”고 희망 섞인 기대도 내비쳤다.
의정 갈등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인적 인프라’는 갖춰졌다. 불통의 정책을 고집했던 정부 책임자는 바뀌었고 출구 없이 강경 투쟁 노선을 걸었던 전공의 대표자도 교체됐다. 의정 간 느껴지는 공기도 달라졌다. 새 정부가 의료 갈등의 원인으로 지적한 전 정부의 무리한 정책과 신뢰 부족은 그동안 의료계가 주장해오던 것과 일치한다. 의료계 역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일제히 환영하며 대화에 나서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투쟁에 의료계 내부에서도 피로감이 감지된다. 의대생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학교로 돌아가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수련병원으로의 복귀를 요청하는 사직 전공의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우선 그동안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의대생·전공의 복귀 협상을 위해서는 범부처 컨트롤 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의료 분야 담당 부처인 복지부뿐만 아니라 교육부·국방부 등 여러 부처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 수련 전공의 부족, 불투명한 대학 입시 정책, 비정상적인 의대 교육, 전공의 군 복무 등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고 정책 도출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부여 받은 확실한 ‘키잡이’가 있어야 한다.
의료계는 자신들을 대표하는 협의체를 명확히 세우고 대표성을 존중해야 한다. 의료 단체는 의대생, 전공의, 공보의, 기성 의사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각 단체의 이해 관계와 입장이 다르다. 그동안 의정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협상안을 내놓아도 의료계가 통일된 의견을 모으지 못했던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대화와 협상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의료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채널을 구성하고 의료계는 그 채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의정 갈등 기간 동안 진통 끝에 도출한 해법들 중 의미 있는 것들은 유지하고 정착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 정부의 유산이라고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원점부터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의사인력추계위원회를 통한 과학적 의대 정원 결정, 병원 체계에 따른 1·2·3차 진료 시스템 정상화, 진료지원(PA) 간호사들의 의료 현장 활용 등은 큰 틀에서 유지하며 세부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사 수 확대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의료 서비스 수요 증가와 필수의료 역량 강화 측면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다. 가시밭길이지만 헤쳐가야 할 과제다. 정부는 국민 고통을 볼모로 한 정책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을 배웠기를 바란다. 의료계는 눈앞의 환자를 외면하는 하얀 가운 입은 사람을 세상 사람들이 ‘의사’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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