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3구의 집값이 주춤한 사이 ‘마·성·동(마포·성동·광진구)’ 등 한강벨트 지역의 아파트 매매 시장의 강세장이 뚜렷해지고 있다. 9·7 공급 대책이 도리어 규제 확대 신호로 여겨진 결과로, 매수세는 분당·광명 등 경기도 선호 지역까지 번지고 있다.
22일 서울경제신문이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의뢰해 이달 1~19일 서울에서 체결된 아파트 매매 거래를 분석한 결과, 광진구의 상승 거래 비중이 61.9%로 집계됐다. 이는 용산구(75%)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광진구의 뒤를 이은 곳은 성동구(59.7%), 마포구(59.62%)로 모두 한강 벨트 지역이다. 상승 거래란 같은 아파트, 같은 주택형의 직전 거래(1년 내 기준)보다 비싸게 팔린 경우를 의미한다. 수치가 높을수록 가격 상승세가 뚜렷하다고 평가된다. 같은 기간 서울 평균 상승 거래 비중은 46.59%다.
가격 상승세는 경기 핵심지로 여겨지는 분당·과천·광명시로도 퍼지는 모습이다. 분당의 경우 9월 1~18일 체결된 신고가 거래가 48건으로, 이는 같은 기간 수도권 주요 지역 중 가장 많다.
일선 공인중개사 “'매물 부족'이 마성광 강세의 1차 원인…팔 물건이 없다”
“그나마 남아 있던 물건들이 지난주부터 빠르게 거래되더니 이제는 매물이 거의 없습니다. 저렴하게 사려야 살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서울 성동구 응봉동의 부동산 중개인 이 모씨는 21일 기자에게 이같이 말하며 전용 84㎡ 이하로는 단 두 건의 매물만 거래가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9월 7일 공급 대책 발표 이후로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거란 생각에 매수세가 확 붙었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었다. 마포·광진구 일대 중개 현장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중개인들은 하나같이 “매수 문의가 쏟아지는 것에 비해 중개할 매물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매물 부족이 올 들어 더욱 심해진 가운데, 9·7 대책이 ‘규제 전 막차’ 수요까지 자극하면서 비(非)강남 한강 벨트의 아파트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본지가 21일 만난 일선의 공인중개사들은 한강 벨트 집값 강세의 일차적인 원인이 매물 부족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광진구 구의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상반기엔 시장이 활발해서 매물이 줄어들었다면, 6·27 대출 규제 이후엔 집주인들이 옮겨 갈 집을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매물을 많이 거둬 들였다”며 “남은 물건은 비싼 것밖에 없다 보니 거래가 많진 않지만 성사되는 족족 신고가를 찍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성동구 아파트 매매 매물은 1월 1일부터 이달 21일 사이 44.6%(3201→1774건) 줄어 서울에서 감소율이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는 송파구(-37.2%), 광진구(-35.2%), 용산구(-33.8%), 동작구(-32.3%), 마포구(-27.6%) 순으로 매물 감소폭이 컸다. 이 지역들은 모두 한강 벨트로 묶이며 선호 주거지로 분류되는 곳들이다. 특히 마포·성동·광진구 등은 강남3구보다 저렴한 10~20억 원대의 아파트가 많아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계속 유입됐다.
9·7 대책에서 확인된 ‘규제 강화’ 기조…'막차 수요'에 기름 부어
공급과 수요가 불일치하는 상황에서 나온 9·7 공급 대책은 비(非)강남 한강벨트에 대한 매수 수요를 증폭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공급 대책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토허구역 지정 권한 확대 등 규제 강화 조치가 담겼다. 현재 서울에서 지역 내 모든 아파트가 토허구역으로 묶인 곳은 강남 3구와 용산구 뿐이다. 시장에서는 국토부 장관도 서울시장처럼 집값 안정 목적으로 토허구역을 지정할 수 있게 되면 주요 타겟이 마포·성동·광진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토허구역에서는 아파트 매수 시 2년간 실거주를 해야 해 갭 투자(전세 끼고 매수)가 불가능해진다.
규제지역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기존 50%에서 40%로 낮춘다는 9·7 대책 내용도 사실상 마포·성동·광진구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규제지역인 강남3구와 용산구는 이미 집값의 40%가 주택담보대출 최대 한도인 6억 원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이 LTV 강화 조치는 지금 규제지역에서는 별 차이를 만들지 못하지만, 만약 마포·성동·광진구가 규제지역으로 신규 지정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곳들에는 지금도 10억 원 초반대 매물이 있어 LTV 40%를 적용하면 주택담보대출 가능 금액이 6억 원 밑으로 줄어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매수 수요자들이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매수를 서두르는 양상이다. 광진구 광장동에서 영업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공급 대책이 발표된 직후 일주일 동안 13~14억 원 짜리 매물은 모두 계약이 성사됐다”고 전했다. 저가 매물 소진으로 광장동의 구축 아파트 시세는 전용면적 59㎡ 매매 기준 14억 원 중반~15억 원부터 시작하는 상태다. 성동구 옥수동 옥수하이츠 전용 84㎡는 10일 25억 1500만 원, 광진구 구의동 e편한세상광진그랜드파크 전용 84㎡는 11일 20억 원에 거래돼 직전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밖에도 올해 서울 아파트 가격이 전체적으로 올라 ‘갈아타기’ 수요가 풍부한 것도 마포·성동·광진구 강세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올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누적 상승률은 약 5.05%에 달한다. 마포구 내 한 공인중개사는 “서대문구, 영등포구 등 아파트들이 전고점을 회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이에 과거 ‘상투’를 잡았던 분들도 가격 회복이 되면서 상급지로 이동하려는 경우가 늘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규제 강화 일변도의 정책보다 다주택자 매물 출현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강남3구와 용산이 보여주듯 규제를 강화해도 거래가 줄어들 뿐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며 “다주택자 규제를 풀어 매물을 돌게 하고, 지방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조치 없이는 규제만으로 집값을 잡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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