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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스톡커] '삼권분립' 없는 美대법, 연말 관세 판결 뒤엎나

■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트럼프 "빨리 재판" 요청에…대법, 관세 변론 속도

"이르면 연내 결정"…'독립기구 해임'도 일시 허용

90년 된 판례도 뒤집어…이민 단속도 대통령 유리

해고·성소수자 등 보수 연승…'연준 장악'도 불안

韓, 본격 실무협상…美 "패소시 1400조원 환급"

존 로버츠 미국 연방 대법원장.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연방대법원이 행정부에 유리한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어 그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유리한 판결이라면 100년 안팎의 판례도 빈번히 뒤집고 있어 1·2심에서 행정부가 패소하더라도 그 결과를 안심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사실상 의회와 사법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할 세력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상호관세 위법,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장악, 불법 이민자 강력 단속 논란 등과 관련한 소송이 연방대법원에 줄줄이 이어지고 있어 사실상 미국 사법부가 금융 시장과 각국 경제를 뒤흔드는 또 다른 주체가 된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빨리 재판하라” 요청에…美대법원, 관세 소송 이르면 연내 결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연방대법원은 9일(현지 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요청한 대로 상호관세 소송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며 첫 구두 변론을 오는 11월 첫 주에 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와 이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이달 19일까지 서면 진술서를 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에 “연내에 판결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소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 4월 2일 만성적인 대규모 무역적자를 국가 안보·경제에 대한 큰 위협으로 규정하고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작됐다. 와인 수입업체 등 관세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 5곳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4월 14일 국제무역법원(USCIT)에 소송을 제기했고, 같은 달 23일에는 오리건주를 비롯한 12개주까지 법적 분쟁에 가세했다. IEEPA는 1977년 제정된 후 주로 적성국에 대한 제재나 자산 동결에 이용되던 법이다. IEEPA에 무역수지나 제조업 경쟁력, 마약 밀반입 등의 이유를 갖다붙여 관세를 매긴 지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국제무역법원은 이후 5월 28일 “관세를 부과할 배타적 권한은 의회에 있다”며 상호관세를 철회하라고 명령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즉각 항소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는 2심에서도 위법 판결을 받았다. 미국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지난달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행정명령의 근거로 삼은 IEEPA에 대해 “대통령에게 수입을 규제할 권한만 부여할 뿐 행정명령으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까지 주지는 않는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IEEPA가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해 여러 조치를 취할 중대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지만 이들 가운데 어떤 조치도 관세 등을 부과할 권한을 명시하지는 않는다”며 “의회가 IEEPA를 제정하면서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한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이달 2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미국 우주사령부 이전 계획을 발표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 사안(상호관세 위법 여부)은 이제 대법원으로 간다”며 “대법원에 조기 심리 개시와 신속한 판결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관세를 없애 버리면 미국은 제3세계 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며 “그만큼 이 판결은 중요하기에 신속한 판결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이 소송이 다른 나라와의 무역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어 11월 첫 주에 구두변론을 진행해 달라는 요청도 대법원에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을 모두 받아들인 셈이다.

6대3 보수 우위…'독립기구 해임 일시 허용' 90년 된 판례도 뒤집어


제롬 파월 의장이 지난 6월 25일 열린 미국 연준 이사회에서 리사 쿡 이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총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대법원은 현재 6대3의 보수 우위 구도로 평가받는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등 6명이 조지 HW 부시 전 행정부나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임명된 보수파로 꼽힌다.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는 커탄지 브라운 잭슨, 엘리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등 3명뿐이다.

대법원이 보수 쪽으로 기울었다 보니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힘을 싣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일에는 로버츠 대법원장이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이 독과점 규제·소비자 보호기구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민주당 추천 위원인 레베카 슬로터 위원을 해임한 사건과 관련해 1·2심의 ‘복직 명령’에 대한 ‘행정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1심과 2심은 복직을 명령했으나 대법원이 하급심의 명령에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의 긴급 심리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그 자체가 최종 판결은 아니지만, 하급심의 중대한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집행 정지 명령을 내린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특히 해당 결정은 대통령의 독립기구 위원 해임을 불허한 기존 판례를 90년 만에 사실상 뒤집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1935년 대법원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책 불일치를 이유로 자신의 뉴딜 정책에 반대하는 윌리엄 험프리 FTC 위원장을 해임한 것을 불법이라고 판단했었다. 이는 부정행위나 직무태만, 무능 등 이유가 아닐 경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연방 기구·기관의 위원을 대통령이 정치적 이유로 해임할 수 없다는 대표적인 판례가 됐다.

앞서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FTC의 알바로 베도야 위원과 슬로터 위원을 상대로 e메일로 해임을 통보했다. 슬로터 위원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고 지난 7월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1935년 판례를 들어 연방법상 해임 보호 조항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워싱턴DC의 연방항소법원 역시 재판부 2대1 판결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상고심을 앞두고 “대법원은 훌륭한 인사들로 채워져 있고 매우 현명한 결정을 내려왔다”는 평가를 내린 게 허튼 소리가 아니었던 셈이다.

이민 단속 판단도 트럼프에 유리…연준 장악도 ‘불안’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가 9일(현지 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해고한 독립 기구 인사의 복직을 대법원이 막자 비슷한 이유로 소송 중인 리사 쿡 연준 이사의 사건 또한 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를 받는다는 이유로 쿡 이사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금리에 깊이 관여하는 연준 인사가 대출 시장에서 사리사욕을 취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미국 대통령이 연준 이사에게 해임 조치를 내린 것은 연준이 설립된 1913년 이후 11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쿡 이사는 부동산을 사면서 실거주 용도라고 서류를 제출해 돈을 빌려 놓고 조지아의 부동산을 2022년 임대로 내놓았다는 혐의를 받는다. 쿡 이사는 2021년 미시간주 부동산에 대해 만기 15년짜리 20만 3000달러(약 2억 8000만 원) 대출을, 조지아주 부동산에 대해서는 만기 30년짜리 54만 달러(약 7억 5000만 원) 대출을 받았다. 쿡 이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한 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임명으로 연준 이사가 된 인물이다. 최초의 흑인 여성 연준 이사이고 임기는 2038년까지다.

쿡 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 조치에 대해 위법하고 연준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반발하며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9일 WSJ에 따르면 이 사건의 1심 소송을 맡은 지아 콥 워싱턴DC 연방법원 판사는 쿡 이사가 제기한 긴급명령 신청을 받아들여 그녀가 직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쿡 이사까지 해임하고 후임을 지명하게 되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당연직 위원인 연준 이사 7명 중 과반인 4명을 자신이 임명한 인사로 채울 수 있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단속 집행에도 레드카펫을 깔고 있다. 현대차(005380)·LG에너지솔루션(373220) 배터리 공장에 대한 대규모 급습을 받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가 하나 더 늘어난 꼴이다. 실제 미국 연방대법원은 8일 로스앤젤레스(LA) 등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에서 이뤄지는 무작위식 이민 단속에 일시 제동을 건 하급 법원 명령을 6대3 결정으로 뒤집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민 당국이 LA 등에서 불법체류자들이 밀집한 곳을 급습해 벌이는 무작위 단속·체포를 계속 진행할 수 있다”고 결정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슬로터 FTC 위원 사건과 비슷하게 이 연방대법원 판결도 긴급 가처분 명령에 대한 결정이다. 본안 소송은 캘리포니아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

대법원에서 연전연승을 하며 자신감을 얻은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체류자 단속에 더 속도를 붙이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백악관 종교자유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는 시카고에 들어가 바로잡고 싶다”며 “왜 시카고가 우리에게 ‘부디 도와달라’고 전화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최근 워싱턴DC에 주 방위군과 연방 요원을 투입해 현지 경찰과 연방 법 집행 요원들이 불법 이민자, 범죄자, 노숙자 등을 단속한 일을 시카고에서도 동일하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직원 해고, 성소수자 배제 등도 행정부 연전연승…韓, 첫 관세 실무 협상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베선트 장관은 동성애자로 뉴욕시 검사 출신의 남편과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성 소수자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올 들어 논란이 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관대하게 판단한 사건은 이 외에도 더 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21일에도 국립보건원(NIH)에 대한 7억 8300만 달러(약 1조 1000억 원) 규모 지원금 삭감을 둘러싼 긴급 심리 사건에서 5대4 의견으로 돈을 깎는 게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삭감 대상은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 소수자 그룹의 질병 관련 연구와 관련된 지원금이다. 이 역시 1·2심 판단을 뒤집은 결과였다.

연방대법원은 또 7월 14일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 교육부 직원 약 1400명을 해고하는 데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결정하기도 했다. 6월 27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 대한 하급심의 ‘전국 효력 중단’ 가처분을 6대3 의견으로 막았다. 전국 단위 정책 중단 명령의 효력을 소송을 제기한 주(州)와 당사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대법원은 5월 6일 트럼프 행정부가 트랜스젠더를 군 복무에서 사실상 배제하는 정책을 두고 “즉시 시행할 수 있다”는 판결도 내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도 미국 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단을 마냥 낙관할 수 없는 입장이 됐다. 이미 한국의 실무 대표단은 지난 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 측과 협의를 마무리하고 9일 귀국길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무역 합의 사실을 확인한 뒤 가진 첫 실무협의였다. 앞서 한국은 지난 7월 30일 3500억 달러(약 488조 원)의 대미 투자와 1500억 달러의 직접투자, 미국 에너지 제품 1000억 달러어치 구매 등을 조건으로 대미 수출품의 상호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내리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현재 한미 양국은 투자 대상 선정 주체, 수익 배분, 투자 이행 방법 등에서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일본과 비슷하게 투자 대상 선정 주도권과 투자 이익의 90% 미국 귀속 등을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정설이다.

월가와 외교가에서는 미국 행정부가 대법원에서 패소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301조와 122조, 관세법 338조 등 다른 수단을 휘두르며 관세 전쟁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 안보 위협, 불공정무역 관행에 대한 보복 조치 등이 문제가 될 경우 대통령에게 독자적인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이다. 더욱이 자동차와 철강·반도체·의약품 등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부과한 품목별 관세는 애초부터 이번 소송의 영향권 바깥에 있다. 철강 관세의 경우는 트럼프 1기 때 이미 행정부가 승소한 바 있다. 9일 CNBC에 따르면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지난주 연방대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행정부가 패소할 경우 관세 환급 규모가 최소 7500억 달러(약 1040조 원)에서 최대 1조 달러(약 139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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