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우위로 꾸려진 미국 연방 대법원이 90년 전 대법원 판례를 사실상 뒤집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립기구 위원 해임을 일시 허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을 통보한 리사 쿡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8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은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이 독과점 규제·소비자 보호기구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민주당 추천 위원인 레베카 슬로터 위원을 해임한 사건과 관련해 1·2심의 ‘복직 명령’에 대한 ‘행정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 1심과 2심이 복직을 명령했으나 대법원은 하급심의 명령을 일시 정지시킨 것이다. 다만 이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 측의 긴급 심리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최종 판결이 아니며 대법원의 재판은 계속된다. 다만 이번 결정이 대통령의 독립기구 위원 해임을 불허한 기존 판례를 사실상 뒤집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1935년 대법원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책 불일치를 이유로 자신의 뉴딜 정책에 반대하는 윌리엄 험프리 FTC 위원장을 해임한 것을 불법이라고 판단했었다. 이는 부정행위나 직무태만, 무능 등 이유가 아닐 경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연방 기구·기관의 위원을 대통령이 정치적 이유로 해임할 수 없다는 대표적인 판례가 됐다. 앞서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FTC의 알바로 베도야 위원과 슬로터 위원을 상대로 e메일로 해임을 통보했다. 슬로터 위원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고 지난 7월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1935년 판례를 들어 연방법상 해임 보호 조항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워싱턴DC의 연방항소법원 역시 재판부 2대 1 판결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총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연방 대법원은 현재 6대3의 보수 우위 구도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하급심을 뒤집고 대통령에게 유리한 판결을 잇따라 내며 주목받고 있다. 현재 대법원에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의 위법 사건 등을 심리하고 있다. 쿡 연준 이사에 대한 해임 통보 사건은 1심에서 다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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