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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스톡커] 韓외노자 다 잡아 가두면, 누가 美 투자합니까

■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美이민당국, 현대차·LG 배터리공장서 475명 체포

"다수가 한국인"…전문직 비자 막혀 ESTA 등 사용

車·반도체·조선도 '인력 비상'…수백조원 투자 차질

35년 산 영주권자까지 구금…관세는 일본차만 인하

"할일 했다" 트럼프는 압박만…"韓, 외교로 풀어야"

정의선(왼쪽)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3월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31조 원가량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이민 당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고강도 단속 정책에 따라 한국의 대기업 산업 현장까지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 수백 명을 체포해 가자 교민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겉으로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를 외치며 관세를 무기로 각국의 대미 투자를 독려하면서, 뒤로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데다 이미 정상회담을 통해 3500억 달러(약 488조 원) 이상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나라라는 점에서 역대 최대 규모 단속 대상이 된 일 자체가 황당하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나온다. 이 와중에 미국은 한국과의 무역 합의 문서화는 미루고 일본의 자동차 관세만 27.5%에서 15%로 내리면서 대미 투자 압박 수위만 한층 더 높였다. 미국 당국이 합법적 체류 신분을 가진 한국인까지 무분별하게 단속하고, 자국 내 생산시설 구축에 필수적인 숙련 근로자 입국 자격 심사에도 까다롭게 굴자 기업과 교민들은 순조로운 투자를 위해 한국 정부가 서둘러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美, 현대차(005380)·LG(003550) 배터리 공장 급습…한국인 근로자 등 475명 체포


4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엔솔 합작 배터리 공장 불법체류자 단속 현장. ATF 애틀랜타 지부 X(옛 트위터) 캡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 회사) 건설 현장에 대한 미국 이민 당국의 단속 영장. 연합뉴스


5일(현지 시간)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이 조지아주 서배너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 회사) 건설 현장에서 압수수색을 펼쳤다. 체포된 사람 대부분은 추가 조사를 받기 위해 조지아주 폭스턴에 위치한 ICE 이민자 수용 시설로 연행됐다.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체포된 인원 중 LG에너지솔루션 본사 소속 팀장, 책임, 선임급 출장자 등 한국인 300명가량이 포함됐다. ICE는 불법체류 일용직 노동자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근로를 할 수 없는 상용비자(B1)나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해 미국으로 입국한 한국인들을 발견해 함께 체포했다. HL-GA 배터리 회사 측은 “임직원과 협력사 인원들의 안전과 구금 해제를 위해 관계 당국에 적극 협조하고 있고 통역, 변호사 지원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법 집행 과정에서 우리 투자 업체의 경제 활동과 우리 국민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HSI 소속 스티븐 슈랭크 조지아·앨라배마주 담당 특별수사관도 5일 기자회견에서 “법 집행기관들과 협력해 불법 고용 관행, 중대한 연방 범죄 혐의와 관련한 형사 수사의 일환으로 법원의 수색 영장을 집행했다”고 이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그는 “이번 수사로 475명이 체포됐고 법 위반자들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475명 중 다수가 한국 국적자였고 정확한 국적별 통계는 없지만 관련 자료를 곧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랭크 특별수사관은 특히 체포된 475명에 대해 “미국에 불법적으로 체류하고 있거나 자격을 위반한 상태에서 불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식으로 영장 집행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 가운데 일부는 미국 국경을 불법으로 넘었고 일부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통해 입국해 취업이 금지된 상태였다”며 “다른 일부는 비자가 있었지만 체류 기간을 초과한 경우였다”고 덧붙였다. 미국 국경을 불법으로 넘은 사람들은 주로 중남미 등에서 불법 입국해 한국 기업의 건설 현장에 취업한 현지의 제3국 국적 근로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슈랭크 특별수사관은 또 “체포된 사람들은 단일 회사 소속이 아니고 다양한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 포함됐다”며 “수사는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 기소 등 혐의 사실이 확정된 단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는 이어 “HSI 역사상 단일 현장에서 이뤄진 최대 규모 단속”이라며 이번 단속이 갑작스러운 조치가 아니라 올해 내내 조사를 거친 뒤 법원의 수색영장을 받아 단행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문직 비자’는 막고 단속만…'K-배터리' 3사, 60조원 투자 중단 위기




한국 기업들은 이번 단속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투자 확대는 압박하면서 신규 공장 건설을 지원할 근로자들의 투입은 막는 ‘엇박자 정책’이라며 당황스러워 했다. 국내 기업이 미국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려면 전문직 비자인 ‘H-1b’를 받은 직원들이 최대한 많이 필요한데 현지 당국이 비자 발급은 막아 놓고 단속만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H-1b 비자는 미국에서 연간 약 8만 5000명에 한해 제한적으로 발급된다. 미국 이민국에 따르면 2024~2025 회계연도의 H-1b 비자 추첨에 등록한 인원은 총 47만 9953명으로 당첨 확률이 18% 수준에 불과하다. 취업 비자를 받는 데만 반년 넘게 걸리다 보니 기업 근로자들은 현지 회의 참석이나 단기 출장에 B1 비자나 무비자인 ESTA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미국 10개 지역에 60조 원가량을 투입해 공장을 짓고 있는 국내 배터리 3사는 비상 상황에 빠졌다. 급습 대상이 된 LG에너지솔루션뿐 아니라 삼성SDI(006400)와 SK온도 신규 공장 설립을 위해 숙련 인력들을 계속 투입해야 하는 상태에서 비자 문제가 발목을 잡게 됐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와 5조 7000억 원을 투입해 만들기로 한 조지아 합작공장 건설 작업을 이날 일단 중단했다.

당초 LG에너지솔루션은 연말까지 일본 혼다와 합작공장을 완공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애리조나 퀸크리크 단독 공장 건설도 마칠 계획이었다. SK온도 포드와 합작한 테네시 1공장과 현대차그룹과 짓는 조지아 공장을 2027년부터 가동할 계획이었다. 삼성SDI는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해 지은 공장을 2027년부터 돌리고 싶어 한다.

투자에 비상이 걸린 것은 반도체·자동차·조선 업계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000660)는 2028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인디애나주에 38억 7000만 달러(약 5조 4000억 원)를 투자해 고대역폭메모리 패키징(후공정) 공장을 짓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3만 대 규모의 로봇 공장, 일관제철소 등을 미국에 건설하기로 했다가 인력 수급 부담을 떠안게 됐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뛰어든 한화(000880)·HD현대(267250) 등도 미국 내 조선소 운영에 골머리를 앓게 됐다. 업계는 예정대로 투자가 진행될 경우 현대차그룹과 SK하이닉스·삼성전자(005930)·국내 배터리 3사 등이 공장 건설로 창출할 미국 내 일자리는 1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35년 산 영주권자까지 구금···한인사회도 ‘초긴장’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됐다가 석방된 고연수(가운데) 씨가 8월 4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 ICE 청사 앞에서 성공회 뉴욕교구 소속의 어머니 김기리 신부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대규모 이민 단속으로 미국 교민 사회도 크게 술렁였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영주권자나 비자 심사를 받고 있는 합법적 체류자까지 체포·구금되는 일이 잇따르는 까닭이다. 성공회 뉴욕교구, 뉴욕이민연대에 따르면 올해 7월 31일에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의 첫 여성 사제인 김기리 신부의 딸 고연수(20) 씨가 뉴욕 이민법원에 출석해 법정을 나서다가 ICE 요원들에게 기습적으로 체포되는 일도 벌어졌다. 고 씨는 재판에서 올 10월로 심리 기일을 연기받은 상태였다. 고 씨는 2021년 3월 종교비자의 동반가족비자(R-2 비자)로 미국에 입국해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상태였다. 뉴욕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에 재학 중인 고 씨는 구금 나흘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7월 21일에는 미국 영주권자 김태흥(40) 씨가 한국에서 형제의 결혼식에 참석한 뒤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당국에 붙잡혔다. 5살때 미국으로 건너온 김 씨는 텍사스 A&M대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라임병 백신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김 씨가 2011년 소량의 대마초 소지 혐의로 기소돼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던 전력이 문제가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 씨는 지난 달 29일 첫 재판을 받고 지금까지 구치소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는 지난달 24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김 씨를 구명해 달라는 어머니의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도 한인 바이올리니스트 존 신(37) 씨가 ICE에 붙잡혀 구금됐다. 신 씨의 아내인 미국 시민권자 다나에 스노우 씨는 이 사실을 지난달 20일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를 통해 알았다. 신 씨는 10살 때 미국으로 이주해 초·중·고교와 대학을 모두 유타주에서 나왔다. 신 씨는 2019년께 음주 운전 등으로 단속됐던 전력이 구금 이유가 된 것을 전해졌다. 신 씨는 이후 치료 목적 수강, 보호관찰 기간 등을 다 거치고 운전면허증까지 재발급 받았으나 해당 이력으로 합법적 체류 자격이 상실돼 추방 위기로 몰렸다.

이달 3일에는 LA 한인타운 한복판의 세차장에 연방 세관국경보호국(CBP) 요원들이 들이닥쳐 라틴계 직원 5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주LA총영사관에 따르면 한국인의 사례가 지난 2년 간 1건 밖에 없었다가 올해에는 5건 수준으로 늘었다.

뉴저지 지역의 한 대기업 주재원은 “과거에는 가볍게 넘어갈 만한 단속 사안도 한 번 잘못 걸리면 한국으로 영영 추방될 수 있다는 불안이 한인 사회에 확산하고 있다”며 “경찰이나 공무원들을 보면 자극하지 않기 위해 다들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일본 車관세만 15%로 인하…“불법체류 단속, 할일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 도중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나눔터 최인혜 사무총장이 건넨 김태흥(40) 씨 어머니의 편지를 전달받고 있다. 김 씨는 지난 7월 21일 한국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으로 들어오다 이민 당국에 붙잡혀 현재까지 구금 중이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산 자동차 관세율을 27.5%에서 15%로 낮추기로 하는 등 동맹국에 대미 투자를 한층 더 독려하고 나섰다. 한국 기업 이민 단속에도 “할 일을 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미일 무역합의 이행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일본 자동차 관세를 기존 27.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가 미국에 5500억 달러(약 766조 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투자처를 선정한다고 적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의 무역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은 7월 22일 합의 후 45일 만이다. 유럽연합(EU)도 관세 인하 조치를 얻기 위한 문서화 조치를 이미 마친 상태다. 무역 합의를 맺은 이후 아직까지 공식 문서를 남기지 못한 한국 입장에서는 대미 협상 부담이 더 커지게 된 셈이다.

이번 행정명령으로 미국의 일본 자동차 관세는 이르면 다음주부터 15%로 낮아지는 반면 한국은 25%의 관세를 그대로 안고 가게 됐다. 앞서 한국은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약 488조 원), 에너지 분야 1000억 달러 구매 등을 조건으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7월 30일 미국과 합의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협상 주체들끼리 최대한 국익에 부합하는 점을 찾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날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4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언급한 미국 거대 기술 기업(빅테크) 규제 경고 대상이 다름 아닌 한국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미국 기술 기업을 공격하는 국가에 맞설 것”이라며 “차별적 조치가 철폐되지 않을 경우 상당한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반도체 등에 대한 수출 제한을 시행하겠다”고 적었다.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대미 투자 압력은 높이면서 이민 단속의 끈은 더 강하게 죄자 우리 기업과 교민 사회는 정부의 더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단속을 두고 “그 사건을 (이민단속 당국의) 기자회견 직전에 들었다”며 “그들은 불법 체류자(illegal aliens)였고 ICE는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그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며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자동차나 물건들을 팔 권리가 있고 그건 일방적인 거래(one-sided deal)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이명석 뉴욕한인회장은 “고 씨 사건으로 한인 이민자들이 심하게 동요하고 있다”며 불합리한 추방 사례 실태 조사, 정보 공유, 법률 지원, 영사관 차원의 신속 대응 체계 강화 등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도 지난달 7일 워싱턴DC에서 가진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한국 국적자인 영주권자가 체포될 경우 한국 정부가 관여해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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