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해임할 가능성이 점쳐지자 미국 국채 시장에서 장기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왔다.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될 경우 국채를 중심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16일(현지 시간) 30년물 국채금리(5.01%)와 2년물 국채금리(3.88%)의 격차는 1.13%포인트로 전날의 1.06%포인트에서 확대됐다. 이 격차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해임하겠다고 공언했던 4월 21일(1.16%포인트)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장단기 금리 격차가 벌어지는 이른바 ‘베어 스티프닝(bear steepening)’ 현상으로, 통상 투자자들이 장기 인플레이션을 전망할 때 나타난다.
국채 시장은 파월 의장에 대한 해임론이 불거지면서 요동쳤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공화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파월 의장의 해임을 승인하는 서한을 보여주며 해임 추진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비리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해임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시장은 파월의 후임이 누가 되든 금리 인하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해임설 보도 직후 기준금리 전망에 민감한 2년물 금리는 급락했다가 진정됐지만 30년 만기 국채금리는 한때 10bp(bp=0.01%포인트)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기준금리 인하는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설을 즉각 부인하면서 국채 시장은 일단 안정을 찾았지만 월가는 장기 국채금리 상승세가 본격화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펜뮤추얼자산관리의 매니저인 조지 치폴로니는 “어느 시점에 국채금리가 5.5~6%까지 올라간다면 국채 시장은 트럼프에게 과연 누가 진짜 주인인지 일깨워주게 될 것”이라며 “장기물 국채금리가 5.5%를 넘기면 주식시장도 흔들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대형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은 일제히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연준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는 우리가 싸워서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말했다.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CEO도 “독립성이 연준의 신뢰를 이끈다”며 “자본시장의 효율성과 미국의 경쟁력에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시장 불안에 대한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전날 “연준을 갖고 장난치는 것은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했고 브라이언 모이니핸 뱅크오브아메리카 CEO도 파월 의장의 조기 교체 시 시장이 반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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