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지역에서 여성의 가치가 출산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실태가 공개됐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최근 파키스탄 여성 수므린 칼리아의 사례를 통해 남아시아 여성들의 건강 문제를 조명했다. 칼리아는 18세에 결혼해 25세까지 4명의 아이를 낳았고, 37세에 갑작스럽게 폐경을 맞았다.
현재 40대 중반인 칼리아는 "과도한 출혈이 시작됐다. 의사를 찾아갔더니 폐경 전 단계일지도 모른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피임용 자궁 내 장치(IUD)를 제거한 후 생리가 완전히 멈췄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통계는 더욱 충격적이다. 미국 거주 남아시아계 여성들의 평균 폐경 연령은 48~49세로, 미국 전체 여성 평균(52세)보다 3~4년 빠르다. 남아시아 본토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인도와 파키스탄 여성들은 평균 46~47세에 폐경을 맞으며, 그 이전부터 폐경 전후 증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파키스탄의 호르몬 건강 전문가 팔와샤 칸 박사는 "많은 여성이 30대 후반이나 40대에 난소 기능 부전을 겪고 있다"며 "이는 아직 진단받지 않은 의학적 문제와 삶의 이른 시기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칸 박사는 특히 "파키스탄 여성들이 여전히 결혼 직후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받는 일이 많다"며 "이는 장기적인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카라치에 거주하는 40대 중반 여성 사비나 카지의 경험은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암 위험 때문에 근치적 자궁적출술을 받은 카지는 큰 좌절감을 느꼈지만, 가족과 주변 지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미 아이 3명을 낳았으니 생식기관이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기는 듯했다는 것이다. 칸 박사는 "사회적 압박, 시모와의 갈등 등으로 남아시아 여성들은 너무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로 인해 노화가 빠르게 진행하고 정서적 측면에서 건강 문제가 심화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보고서는 남아시아 지역에서 여성의 가치가 출산 능력에 따라 평가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건강권 보장과 사회적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여성을 출산 도구로 보는 사회적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이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직결되어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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