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은 연결돼 있습니다. 자연의 작물을 우리가 먹고 농촌에서 생산하는 것들을 도시에서 먹죠. 밥상이 살아야 농촌도 살 수 있습니다.”
권옥자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상임대표는 1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농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라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협동하고 상생하는 구조가 지금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살림은 사회·농민운동가인 고(故) 박재일 선생이 도시 소비자와 농촌 생산자를 연결해 생태적 삶을 실현하고자 1986년 서울 성북구에 작은 유기농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차리면서 시작됐다. 2년 뒤 협동조합으로 탈바꿈한 한살림은 39년이 지난 현재 전국적으로 95만 명에 이르는 조합원(출자자)을 둔 국내 최대 생협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234개 매장에서 총 5000억 원의 거래액을 달성했다. 한살림에 농산물과 가공식품 등을 공급하는 생산자는 2240곳에 이른다. 권 대표는 “한살림은 단순히 건강한 먹거리를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친환경·유기농 농업을 살리는 실천의 현장”이라며 “농업은 자연과 인간이 공생해야 하는 본질적인 산업이고,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분야”라고 강조했다.
2023년부터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권 대표가 한살림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95년 첫아이의 아토피 증상 때문이다. 그는 “당시에는 아토피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단순 피부 질환으로만 알았는데 같은 동네 주민이 한살림을 소개해줘 유기농 먹거리로 바꿔보게 됐다”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는 시스템도 알았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문제였던 ‘밥상’이 공동체의 과제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매년 7월 첫째 주 토요일(올해는 7월 5일)은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제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날’이다. 올해 기념일을 맞아 포럼과 캠페인 등 국제 연대 활동을 펼친 한살림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권 대표는 “쌀 소비가 계속 줄고 있어 지난해에는 ‘논을 살리자’는 쌀 소비 운동을 전개했다”며 “또 고령 생산자들을 이을 청년 농업인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한살림은 쌀을 비롯한 주요 농산물의 소비 확대를 통해 생산자 지원뿐 아니라 독거노인과 저소득층 아동 등 지역사회 취약 계층을 위한 먹거리 돌봄 활동도 실천 중이다. 서울 쪽방촌 식당들에 정기적으로 물품을 공급하는 등 먹거리로 이웃 돌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권 대표는 “한살림 하면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정란과 참기름·쌀 판매로 시작한 한살림은 이제 떡과 쌀과자 등 다양한 가공식품까지 영역을 넓혔지만 공통된 기준은 하나다. ‘내 아이가 먹는다’는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식품 시장에서는 새벽배송과 초고속 유통이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한살림은 다르다. 권 대표는 “한살림도 온라인 판매를 하지만 요즘 트렌드인 새벽배송은 하지 않는다”면서 “먹거리를 전하는 데 있어 속도보다는 신뢰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내년에 설립 40주년을 맞는 한살림이 중장기적으로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데 밀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기후변화 시대에 농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친환경 농업이야말로 지구를 지키는 실질적인 대안이라는 생각에서다.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살림 대표로서 세 가지 책임을 언급했다. 출자자인 조합원에게 가치를 돌려주는 책임, 조직 구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책임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다. 권 대표는 “물품 하나를 팔면 70%는 생산지로 돌아간다”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하는 ‘공정한 유통’이자 ‘사회적 책임’의 실현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