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4일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 대해 “이제는 국민 통합,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할 일만 남았다”며 “약속을 지켜 국민들에게 신뢰를 쌓으면 이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종로구 재단법인 국민시대 사무실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말한 ‘통합’을 실천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최대의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쌓으면 이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우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세 번의 당대표와 국회의장·국무총리를 지내며 여야를 두루 경험한 정 전 총리는 새 정부의 과제로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해 이제는 만년 여당도, 만년 야당도 없다”며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될 수 있으니 서로 대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이 이날 여야 대표와 오찬 회동을 한 것을 두고는 “시작이 좋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으로 진영 갈등이 극한까지 치달은 상황에 대해서는 “교착 상태를 해소하는 시작은 대통령과 여당이어야 한다”고 짚었다. 정 전 총리는 “국민의힘이 배출한 정권이 내란 사태를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당 전체를 범죄 집단으로 볼 수는 없다”며 “이번 대선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41%의 존재를 인정하며 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 대통령의 취임 선서 이후 첫 일정이 여야 대표 오찬 회동이다.
△바람직한 시작이다. 내란을 주도한 행위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지만 여야 간 소통을 실천하는 것은 정권 성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야 간 정치 정상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여야 관계에는 숨 쉴 틈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윤 전 대통령 탄핵 사태부터 지금까지는 정치가 완전히 부재했다. 정치가 나아져야 하는데 후퇴했다는 게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앞서 ‘영수회담의 날’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영수 간의 소통이 잘 이뤄지면 국정 전반의 소통이 잘 이뤄질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의 결정적 실수가 야당 대표를 처음 만나기까지 1년 8개월이 걸린 것이다. 이것 때문에 정국이 경색되고 국정이 표류하며 계엄과 탄핵까지 가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됐다.
-여당이 소통 상대로서 야당과 내란 동조 세력을 구분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나 정치가 판단하는 게 아니고 결국 사정 기관이나 법원에서 판단할 일이다. 정치와 사법을 잘 구분하면 된다. 그걸 혼동하는 게 문제다. 난국을 타개하는 시작은 역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어야 한다. 야당한테 손을 내밀고 적극적으로 대화해서 협력을 얻어내는 게 중요하다. 실체를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정치 보복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정치 보복을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과거부터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보복 성격의 일이 계속 일어났다. 누군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고, 만약 이 대통령이 그 일을 한다면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부터 바른길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합을 위한 인사의 첫 단추는 어떻게 끼워야 하나.
△탕평 인사를 해야 한다. ‘끼리끼리’ 혹은 ‘패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인재가 굉장히 많다. 두루 인재를 구하겠다고 생각하면 정말 좋은 인재들이 널려 있다. ‘탕평 인사를 하겠다,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서 쓰겠다’ 생각하고 울타리를 헐어버리면 좋은 인재를 골라 쓸 수 있다. 인재풀을 넓혀서 다양한 인재를 등용하게 되면 야당도 조금 더 협조적인 자세로 돌아설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또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을 일방적으로 임명해야 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인사는 만사’라는 말을 흔히 쓰는 말로만 치부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하는 이재명 정부에 조언한다면.
△국회의장 시절 의회 차원에서 국정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서 취임식을 하러 온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이 대통령도 인수위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국정을 챙겨야 할 것이다. 국정은 한 치의 오차도, 실수도 없어야 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해나가야 한다. 지금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쌓인 상황이지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거나 소통이 부족해서 불필요한 불신이 생길 수 있다.
-경제위기를 극복할 해법이 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당시 김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말했는데, 지금 이 대통령이 민생 회복을 외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노력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
-재계가 이 대통령의 ‘반기업’ 프레임을 두려워한다.
△경제는 정권이 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과 가계, 즉 경제 주체들이 하는 것이다. 정부는 경제활동을 자유롭고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정부가 뭔가를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물론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정책을 잘 구사해야겠지만 시장에 자율성을 주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요체다. 간섭은 최소화하되 경제 주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굉장히 실용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외교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일단 이 대통령이 스탠스는 잘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중일 외교도 실사구시적이고 현실적인 스탠스를 잘 잡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외교를 초당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야당도 참여시켜서 국회에서 외교 문제에 대한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정부가 외교를 독식하지 말고 초당적인 외교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면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도 대통령의 위상이 올라갈 것이다.
-남북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 북한의 2국가 체제론에 동조하면 안 된다. 지금은 통일이라는 말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양측 관계가 경색돼 있지만 대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내가 하면 최선이고 못 하면 다음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 필요하면 민간이 역할을 하게 하고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는 등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새 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할 수 있을까.
△개헌은 하루하루를 다툴 정도로 시급한 사안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그래서 개헌은 하루라도 빠를수록 좋다. 이미 38년 동안 개헌을 못 했는데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다만 개헌은 대통령의 어젠다가 아니다. 대통령에게 목매달 것이 아니라 유력 정당들이 책임 있게 해야 한다. 대통령은 개헌이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각 정당의 합의를 존중해주는 노력만 하면 된다.
-여당과 야당,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해서 만년 여당도, 만년 야당도 없다. 역지사지해라.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될 수 있으니, 야당은 여당을 너무 괴롭히지 마라. 여당은 야당을 너무 무시하면 안 된다.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고, 협력해야 한다. 과거 대통령들을 보면 국회에서 정치를 하다가도 대통령이 되면 국회를 멀리한다. 대통령에게는 제발 국회에 있었던 때와 같은 생각으로 대통령을 하시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전주 신흥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쌍용그룹 임원을 지냈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5년 15대 총선을 시작으로 전북 진안·무주·장수와 서울 종로에서 6선을 했다. 참여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았고 열린우리당 의장 두 번, 통합민주당 대표 한 번 등 당대표만 세 번을 지냈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시절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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