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참패의 원인을 두고 내분이 격화될 조짐이다. 친한(친한동훈)계는 대선 패배 책임을 주류인 친윤(친윤석열)계에 돌리며 당권 장악의 전면전을 예고했다. 반면 민심의 냉엄한 평가를 받아들여야 할 당 지도부는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침묵으로 일관, 당내 ‘보수 재건’ 의지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4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결과는) 국민께서 ‘불법 계엄’과 ‘불법 계엄 세력을 옹호한 구태 정치’에 대해 단호한 퇴장 명령을 내리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전 대표는 지지층을 향해 “너무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말아달라”며 “기득권 정치인들만을 위한 지긋지긋한 구태 정치를 완전히 허물고 국민이 먼저인 정치를 바로 세울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친한계 의원들도 즉각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들은 “하루빨리 새 원내지도부를 구성하고 당의 진로를 설계해야 한다(박정훈 의원)” “권성동 의원님, 이제 정말 떠날 때다(정성국 의원)” “현 지도부는 지체 없이 사퇴해야 한다(한지아 의원)” 등 지도부 퇴진을 압박하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국민의힘 의원 단체 대화방에서도 친한계를 중심으로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는 등 설전이 오갔다. 이처럼 친한계가 선거 패배 뒤 곧바로 집단행동에 나선 배경에는 차기 당권을 확보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당 주류를 향한 보수 지지층의 반발이 커진 지금이야말로 당내 주도권을 가져올 때라는 정치적 계산이다.
그러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는 용퇴 의사 등 표명 없이 일단 ‘버티기’에 돌입했다. 대선 패배 이후 당 지도부의 자진 사퇴는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혼란 수습을 이유로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대신 비대위 체제를 유지하며 내년 지방선거를 대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향후 거취는 5일 의원총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김문수 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직접 당권 도전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지만, 당의 미온적인 지원 속에서도 40%가 넘는 득표율을 거둬 선전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김 전 후보는 이날 선대위 해단식에서 앞선 지도부의 ‘후보 교체’ 논란을 언급하며 “당내 민주주의가 완전히 사라졌다. 삼척동자가 봐도 말이 안 되는 방식으로 공직 후보를 뽑지 않았나"고 작심 비판했다. 4선 한기호 의원은 이날 의원들에게 “나라를 살리기 위해 김 전 후보를 빠른 시일 내 당 대표로 추인해야 한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