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지역의 한 중소기업 대표 A 씨는 도내 토지를 매입해 공장을 증축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남도로부터 보조금 5억 원을 받았다. 당연히 도의 허가 없이 매도하거나 양도, 담보 제공이 불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었다. 하지만 A 씨는 보조금을 받은 직후 매입한 토지를 그대로 매각했다. 경찰은 A 씨를 5월 검찰에 송치했고 전남도는 A 씨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며 보조금 5억 원에 대한 회수 절차에 돌입했다. A 씨뿐만이 아니다. 경찰의 이번 수사에 따르면 전남 지역에서만 30개 업체가 130억 원의 보조금을 부정하게 수급한 정황이 발각됐다. 심지어 보조금을 받은 토지를 은행에 담보로 제공해 현금을 융통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기준 110조 원까지 불어난 국고보조금이 전국 곳곳에서 사기꾼들의 손에 의해 줄줄이 새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시설을 운영하는 명목으로 지급받은 돈을 유용하거나, 위조 서류로 국책 사업에 참여해 보조금을 편취하는 등 수법도 다양하다. 기획재정부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매년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을 적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부정 수급 과정에서 공무원들까지 직접 개입한 경우도 적잖아 적발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남경찰청이 지난달 적발한 대규모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는 그 규모와 과정이 다소 충격적이다. A 씨는 전남도로부터 입지보조금과 시설보조금 등 5억 원을 받은 뒤 공장 부지 명목으로 토지를 매매하고 이를 그대로 매각한 혐의를 받는다. 입지보조금은 지자체에서 관내에 공장을 신축 또는 증축해 고용을 창출하라는 뜻에서 5년간 사업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토지 매매가의 30%를 업체에 주는 지원책이고 시설보조금은 공장 증설에 20억 원 이상 투자한 기업에 투자 금액의 5%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당연히 토지를 업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데 이 단서 조항이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A 씨 사례가 불거지자 전남경찰청은 도내 업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A 씨를 포함해 무려 30곳에 달하는 업체가 교부 목적에 맞지 않게 금원을 오용하는 등 부정한 방식으로 보조금을 수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개인회사 3곳, 주식회사 27곳이었다. 30개 업체 중 A 씨 업체를 제외하고 26곳은 보조금으로 매입한 토지를 도의 허가 없이 은행에 담보로 맡겨 현금을 확보했다. 3곳은 토지의 소유권 이전이 이뤄졌거나 부동산에 신탁등기·가등기·압류 등이 걸려 있었다. 담보로 제공한 토지는 경매에 넘어갈 경우 회수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공장을 지으라고 토지 구매에 보조금을 보탠 지자체가 눈 뜨고 코 베이는 식으로 엉뚱하게 기업의 배를 불린 것이다.
민간 위탁 운영자가 지자체가 운영하는 사업을 마치 개인사업처럼 운영해 국고보조금을 타낸 사례도 있었다. 전남경찰청은 지난해 10월 도내 조성된 마리나의 민간 위탁 운영자 2명을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관내 학교들과 연계해 생활 스포츠 클럽을 운영한다는 명목으로 받은 보조금을 편취해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구체적으로 해양 레저 스포츠 체험 교실 운영 명목의 국고보조금 2억 600만 원 중 1억 550만 원을 횡령하는 등 총 5억 6000만 원 상당을 유용했다. 지인의 이름을 빌린 ‘유령 강사’를 등록해 지자체로부터 급여를 지원받았는데 이 중 6분의 1은 이름을 빌려준 지인에게 용돈으로 줬고 나머지는 편취했다.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설립된 시민단체들도 나라 곳간을 갉아먹는 범죄를 서슴지 않고 있다. 2월 부산지법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과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애인 단체 사무총장과 감사 등 2명에게 징역 4년과 징역 5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단체가 위탁받은 해운대해수욕장 파라솔 대여 사업과 활동 지원 급여 제공 사업을 전대받고 개인적으로 운영했다. 또한 시군구에 활동 지원 급여 비용을 청구해 보조금 약 5억 7465만 원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국고보조금을 노린 사기가 판을 치는 가운데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부정 수급 사실이 발각될 경우 형사처벌 외에 2~5배의 제재부가금을 부과한다는 사실을 더 강력하게 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원칙적으로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로 다뤄지는 국고보조금 유용에 대해 사기죄와의 상상적 경합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상상적 경합이란 한 개의 행위가 여러 혐의의 구성 요건을 충족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보조금을 횡령하는 것이 보조금 관련 법 위반에도 해당하지만 지급 주체인 ‘대한민국’을 기망해 금원을 편취한 사기에도 해당한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판례에서 법원은 피해자를 대한민국으로 적시하고 사기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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