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국제적 지위를 끌어 올리기 위해 중국은 ‘양탄일성(兩彈一星)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양탄일성(两弹一星)’ ‘두 개의 폭탄과 하나의 위성(Two bombs·One Satellite)’이라는 뜻이다. 1964년 10월 16일 원자폭탄 첫 실험과 뒤이은 수소폭탄 실험(1967년)·인공위성 발사(1970년)에 성공한 것으로, 중국이 자국 군사력을 자랑할 때 빠지지 않는 성과다.
지난해 10월 16일 중국은 첫 핵실험 성공 60주년을 맞은 베이징 중국과학원 옌치후 캠퍼스에 위치한 ‘양탄일성(兩彈一星) 기념관’을 재개관했다. 양탄일성 기념관은 2013년 중국 최고 자연과학 연구기관이자 장관급(級) 기구인 중국과학원에 둥지를 틀고 개관 10년 만인 올해 초 대대적인 새 단장에 들어갔다고 이날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관 행사에서 허우젠궈(侯建國) 중국과학원장은 “신(新)시대 양탄일성 정신의 찬란한 장(章)을 이어가자”고 했다
이는 핵 실험 성공 이후 중국이 빠른 속도로 핵무력 증가에 나서고 있는 흐름의 연장선이다. 중국 매체 펑파이는 “60년 전 오늘 중국 원자폭탄이 터지며 울린 ‘동방의 굉음’으로 대국들의 핵 협박과 독점은 깨졌고 중국인의 허리는 곧게 펴졌다”고 했다. 핵무기 개발 60주년을 계기로 중국 관영매체와 국가기관이 동원돼 핵무장 강화 의지와 핵 보유 정당성을 공공연하게 밝힌 것이다.
이 같은 핵무장 증강 노력 덕분에 중국은 지난 한해만 핵탄두가 100개 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19일(현지 시간) 미 국방부가 발표한 연례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 따르면 에서 중국이 보유한 핵탄두 수량은 2023년 한 해만 500개에서 2024년에 600개로 늘었다. 1년 새 약 20%나 급증했다. 200개 수준으로 추정됐던 2020년과 비교하면 거의 3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미 국방부가 2030년엔 중국이 보유한 핵탄두 수량이 1000개를 웃돌고 최소 2035년까지 핵전력을 지속 확대해 핵탄두 1500개를 확보해 배치할 것으로 내다봤다는 점이다.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핵무력을 증강하고 나선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 논리에 따라 핵 개발에 성공해도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수치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국방부는 2024년 중국의 핵탄두 보유수가 세계 최대 핵탄두 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에 비해서는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수년내에 네자릿수 핵탄두를 보유하게 돼 ‘3대 핵강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으로 내다봤다.
미 국방부 보고서의 내용은 지난 2024년 6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공개한 ‘2024년 연감’과 맥락이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연감에서 SIPRI는 2024년 1월 기준 중국의 핵탄두 보유량이 500개로 추정되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410개보다 90개 늘어난 것이다.
SIPRI는 또 중국의 군비 증강 계획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 건설 중인 약 350개의 핵탄두 보관용 사일로 규모 등으로 추정해보면 향후 10년 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가 650~1200개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중국은 현재 238개의 ICBM을 보유하고 있고 이 역시 향후 10년 동안 급증할 것으로 보여 미국(800개), 러시아(1244개)를 넘어설 것이라고 보고서는 예상했다.
짚고 넘어갈 대목은 중국이 핵무장이 가능한 미사일 전력도 크게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극초음속 미사일을 보유하는 등 지난 20년 간 재래식 및 핵탄두를 탑재한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발전을 이뤘다고 보고서는 꼬집었다.
고위력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대륙간 탄도사거리 미사일 시스템 개발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단순히 핵탄두 수량만 늘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출력 정밀 타격 미사일부터 ICBM까지 핵무기 종류를 다각화하고 타격 능력까지 정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 곧바로 미국 본토를 겨냥한 핵 공격이 가능해지면서 미국이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특히 미국 국방부 보고서는 중국의 핵전략 증강이 패권 야욕에 의한 행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중국 로켓군이 2024년 9월 예고 없이 훈련용 모의 탄두를 탑재한 ICBM 한 발을 태평양 공해 해역으로 발사했다고 지적하며 “중국의 치솟는 핵 야망의 표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패권유지를 위해 중국의 ‘위협’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이 보고서는 이전의 유사한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편견으로 가득 찬 채 중국위협론을 유포하는데, 이는 자신의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핑계를 찾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중국이 핵무장에 적극 나서게 된 단초는 마오쩌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6년 8월 6일 마오쩌둥은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원자폭탄은 미국이 남을 겁주기 위한 종이호랑이다. 보기엔 무서운데 실제로는 무력하다”고 핵무기에 대해 무시했다.
그러나 10년 뒤인 1956년 4월 마오쩌둥은 돌연 “아무래도 우리만의 원자폭탄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입장을 바꿨다. 옛 소련 방문에서 핵무기의 위력을 직접 체감한 데다 6·25전쟁과 제1차 대만해협 위기(중국이 1954년 9월 대만 진먼다오를 공격한 뒤 이듬해 4월까지 벌어진 전쟁 위기) 당시 군사력의 한계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후 1959년 6월 소련이 원자폭탄 제조를 돕겠다는 중국과의 약속을 파기하자 자력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596’ 프로젝트를 공식화했다. 중국이 암묵적으로 정한 개발 시한은 1967년 1월. 미국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하던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확정될 시기를 고려한 것이다. 양국이 중국의 핵 프로젝트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마오쩌둥은 핵실험 일정을 앞당겨 진행했다.
결국 도쿄 올림픽이 한창이던 1964년 10월 16일 중국의 첫 핵실험은 ‘추씨(氏) 아가씨’란 뜻의 ‘추샤오제(邱小姐)’란 작전명을 통해 성공적으로 끝냈다. 당초 계획한 데드라인보다 약 2년 일찍 중국 신장의 뤄부포호(羅布泊湖) 핵실험장에서 성공적으로 끝마치면서 중국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핵보유국 5국(미·영·프·중·러) 중 마지막 자리를 차지해 현재까지 핵에 대한 과점적 지위를 가지게 됐다.
핵실험 성공 이후 중국은 ‘완전한 핵무장’을 위한 후속 작업에 더욱 속도를 냈다. 핵무기 발사에 쓰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발사체를 개발하고 핵탄두를 대폭 늘린 것이그 연장선이다. 1966년 10월 27일 중국은 처음으로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인 둥펑(東風·DF)-2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도 성공했다. 이듬해에 수소폭탄 실험 성공, 1980년에 태평양을 향해 중국 첫 ICBM인 둥펑-5 발사도 완벽하게 성공했다.
중국은 1996년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 가입으로 핵실험을 중단하기 이전까지 모두 46차례 핵실험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