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이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종소리. 그곳에는 빨간 옷을 입고 종을 울리는 사람과 빨간 냄비를 볼 수 있다. 누구나 익숙한 구세군의 자선냄비다. “자선냄비에 기부하는 것은 가장 낮을 곳을 향한 가장 선한 손길입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기부자 모두가 세상과 사람을 구하는 구세군이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빌딩에서 만난 최철호(52) 구세군대한본영 사관은 “구세군의 비전이나 가치는 대단히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 곁에 있어 주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구세군은 처음부터 거리에서 시작했고, 누군가의 옆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희들이 거리를 지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땅에 자선냄비가 등장한 것은 1928년 서울 명동. 영국에서 시작한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 1908년 한국군국을 설립한 지 20년 만이다. 올해는 모금 방식에 변화가 있다. 길거리에 건 자선냄비는 316개로 지난해보다 40개가량 줄이고 대신 키오스크 형태의 온라인 모금이 새로 도입됐다. “키오스크 10개를 서울, 부산,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설치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갈수록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적어 모금 방식도 바꿔야 하는 것이죠. 과거 한때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한 온라인 모금을 진행했는데 기술적 애로가 있어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키오스크는 올해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에 대폭 늘릴 예정입니다.”
현금이 없어도 자선냄비에 기부할 수 있다고 구세군은 설명했다. “자선냄비 뚜껑을 자세히 보면 QR코드가 새겨져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촬영하면 원하는 금액만큼을 기부할 수 있어요. 자선냄비가 오프라인과 온라인 두 개 있는 것이죠. 대체로 중장년층이 익숙한 빨간 냄비에 현금을 넣고 젊은 층은 QR코드를 이용하는 편입니다.”
그는 마흔 넘어서 임관한 늦깎이 사관이다. 서른아홉에 구세군사관대학원대(옛 구세군사관학교)에 입교해 2년간의 엄격한 교육과정을 마치고 2011년 성직자인 사관으로 임관했다. “원래 35세 이하만 입교를 허용하는데 세 차례의 면접 과정을 거쳐 나이 제한 예외를 인정받았습니다. 구세군 성도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영문(구세군의 교회 명칭)을 다녔는데 봉사와 구호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 의식이 생겼습니다. 서른 초반부터 고민하다 입교를 결심했습니다.”
신속한 구호·복음 전파 위해 군대식 조직 운영
최 사관은 구세군에서 자선냄비 총괄과 수원 담임사관 등을 거쳐 현재 구세군대한본영에서 대외업무담당관을 맡고 있다. “구세군이 계급이 부착된 군복을 입고 조직 체계가 군대식인 것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호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의 전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구세군은 1865년 영국에서 창립했는데 당시는 산업혁명으로 도시 빈민이 넘쳤던 시절입니다. 일반적인 교회 조직으로는 복음 전파와 빈민 구호를 벌이기 어렵기에 군대식 시스템을 도입해 그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구세군한국군국은 전국 251개 교회와 150여 개 사회복지시설을 통해 기독교 복음 전파와 사회복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연간 기부금 140억~150억 원 가운데 연말 자선냄비 모금액은 20억~3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구세군은 우리나라에 자선냄비가 등장하기 전인 1924년 국내 최초의 구호 사업을 전담할 공익법인을 설립한 기록도 있다.
최근 비상계엄 사태가 모금에 영향을 주지 않는지 물었더니 “없지는 않지만 미미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간 단위로 모금 상황을 체크해보니 사회적 이슈가 있었던 12월 둘째 주 서울에서만 다소 줄었지 경기권은 다소 늘어났다”면서 “오히려 어려울 때 모금이 증가하기도 한다. 2016년 지금과 비슷한 사회적 이슈가 있었는데 전년 대비 7%쯤 늘었다. 올해도 사랑과 온정으로 냄비를 충분히 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억 원 이상 초고액 기부자는 몇 년 전부터 나오지 않고 있어요. 올해는 이달 4일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자선냄비에 1200만 원을 낸 기부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수표 1000만 원권 1장과 100만 원권 1장, 오만 원권 20장이 봉투에 담겼습니다. 저희로서는 너무 고맙죠. 사실 5만 원과 10만 원 정도를 지나가는 길에 자선냄비에 놓고 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선냄비에 보내주시는 응원이라고 생각하고 책임감도 더 커집니다.”
그는 “매년 연말 거리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모금 때문만은 아니다”라면서 “사랑의 종이 울려 퍼질 때마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게 되고 나눔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퍼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선냄비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마음도 닫힌 분에게 사랑의 온정과 빛을 스미게 한다”며 “자선냄비를 보시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작은 정성이라도 나눠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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