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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삭제된 위안부 역사, 詩로 끄집어내다

<한국계 캐나다인 에밀리 정민 윤, 시집 '우리 종족의...' 출간 간담>

"비판의식 없는 단순 재현은 폭력

피해자 트라우마 될까 두려웠지만

훼손된 역사 제대로 공유하려 용기"

美 대형출판사 출간 화제된 시집

국내선 한글·영어원본 합쳐 선봬





“…달려가는 그녀는 누가 봐도 여자야. 그녀가 넘어져. 그가 웃어. 빼앗긴 나라에서 몸이란 무엇일까. 혹은 누구의 것일까. 전쟁 중에는 무엇이 옳을까. 전쟁 중에는 무엇이 떠날까. 전쟁은 한국을 떠나지 않았어. 나는 떠났지. 나는 웅크려. (하략)”

한국계 캐나다인 시인 에밀리 정민 윤(29)은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자신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열림원 펴냄)’ 중 시 하나를 낭독해달라는 요청에 ‘일상의 불운’이라는 시를 읊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건으로 시작해 현대 여성들이 겪는 일상적 폭력에 관한 이야기까지 총 35편의 시를 담은 윤 작가의 시집은 지난 2018년 9월 미국 내 대형 출판사인 하퍼콜린스에서 출간돼 화제를 일으켰다. 이번에 소설가 한유주의 번역으로 국내에도 선보이게 된 시집은 앞부분이 한글판, 뒷부분은 영어 원본으로 이뤄졌다. 일주일 전 입국한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자가격리 중으로, 간담회에는 영상으로 참여했다.



그가 낭독한 시 ‘일상의 불운’은 2017년 ‘뜨락정원 소책자 시문학상(Sunken Garden Chapbook Poetry Prize)’을 수상한 작품이다. 윤 작가는 이 시에 대해 “마산 출신의 외할머니가 한국전쟁 중 겪은 얘기를 들려주신 후에 쓴 시”라며 “한국전쟁에 대해 많이 안다는 사람조차도 서울과 격전지 이외 지역의 상황을 잘 모르는데 전쟁 중의 일상과 그 와중에 겪은 여성들의 참상을 시를 통해 탐색했으니 일종의 ‘실화적 낭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2년 부모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펜실베이니아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시인 에밀리 정민 윤. /사진제공=열림원




그의 시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라는 어두운 역사를 깊게 파고들었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위안부 이야기를 시로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윤 작가는 “처음부터 일본군 성노예제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며 “동료들과의 대화 속에 우리의 훼손되고 삭제된 역사를 다시 끄집어내 이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는 “미국인 독자들이 이 같은 역사를 알게 해 줘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며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각국이 보편적으로 경험한 것을 시로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시인 에밀리 정민 윤. /사진제공=열림원


위안부 역사를 시로 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윤 작가는 “비판의식 없는 단순한 재현은 폭력이 되기 쉽다”며 “내가 이분(위안부 할머니)들의 트라우마를 반복하게 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폄하·훼손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할머니들이 발언할 수 있는 위치나 상황에 있는가, 내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말함으로써 그분들과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거듭 질문했다”며 “그러던 중 미국인 친구들이 ‘시를 쓰는 한국인 여성으로서 네가 아니면 누가 이 이야기를 시로 쓰겠느냐’는 말이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향후 활동에 대해 저자는 “사실(fact)이 아닌 진실(truth)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여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소설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서 “이번 시집은 분노와 슬픔을 비료 삼아 쓴 글인데 다음 작업은 악쓰고 소리 지른 후 나를 돌보는 마음으로 돌봄과 사랑에 관한 시를 쓰고 싶다”고 전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시를 써 주목받은 시인 에밀리 정민 윤. /사진제공=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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