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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금속에서 최고의 음색을 빚어낸다...파이프오르간 匠人의 세계

■[인터뷰]안자헌 파이프 오르간 빌더

파이프 오르간 '빌더' 안자헌

교회 풍금 치며 오르간 매력 빠져

공학 전공 후 전자오르간 회사 입사

9년간 獨 유학...'마이스터' 취득

5,000개 파이프·바람저장소 다뤄

"완벽한 화성 만들어낼 때 설레"

“이런 아름다운 소리는 현장에서 들어야 하는데….”

지난달 28일 롯데콘서트홀이 유튜브를 통해 진행한 오르가니스트 신동일의 무관객 온라인 공연은 많은 이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았다. 실시간 채팅 창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뿜어내는 웅장한 음색에 매료된 감상평이 쏟아졌다.

악기의 제왕, 그 심장에 선 남자
차가운 금속으로 뜨거운 감동을 빚어내는 ‘악기의 제왕’ 파이프 오르간. 그 웅장한 겉모습 뒤에는 수천 개의 금속 파이프가 들어선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거대하고 복잡한 오르간의 내부는 흡사 은빛 대나무 숲을 연상케 한다. 관객들에게 이 ‘제왕’이 뿜어내는 천상의 소리를 전하는 이가 연주자라면, 그 거대한 심장 곳곳을 누비며 최상의 소리를 찾아내는 것은 파이프 오르간 빌더의 몫이다. “조율을 거쳐 만들어낸 완벽한 화성만큼 매력적인 게 없다”는 안자헌 파이프 오르간 빌더를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났다.

안자헌 파이프 오르간 빌더가 롯데콘서트홀의 파이프 오르간 내부에서 파이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5000개 파이프 숲서 최고의 소리를
인사를 나눈 뒤 안자헌 빌더가 기자를 데리고 간 곳은 이날의 일터, 콘서트홀에 설치된 오르간 내부다. 가로 12m, 세로 3m, 높이 12m 오르간 뒤에 펼쳐진 아파트 3층 규모의 공간이다. “콘솔(연주대)에서 건반을 누르면 파이프의 마개가 열리고, 이 저장소에 모아둔 바람이 관을 통해 전달되면서 소리가 나는 거죠.” 작은 체구의 안 빌더는 오르간 내부로 들어서자 밖에서 보였던 모습과는 다른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미로 같은 공간을 자유로이 헤엄쳐 다녔다.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오르간 뒤의 바람 저장소와 음색 조정장치, 파이프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을 점검하는 게 빌더의 역할이다. 복잡한 장치들과 5,000여 개 파이프를 움직이는 ‘악기 속의 또 다른 지휘자’인 셈이다.



오르간의 음색을 사랑한 전자공학도
“오케스트라의 모든 음색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가 바로 파이프 오르간입니다.” 안 빌더가 이 일에 종사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 ‘음색’ 때문이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웬만한 대기업 취직 기회를 마다하고 작은 전자오르간 회사를 택했다. “어릴 때 독학으로 풍금을 익혀 교회에서 반주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오르간에 관심이 생겼어요. 좋아하는 일과 전공을 함께 살릴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선택한 게 전자오르간이었죠.” 일을 할수록 ‘진짜’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의식은 커져만 갔다. 결국 그는 서른넷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9년간의 독일 유학, 마이스터가 되다
3년 반의 전문학교 과정을 마친 뒤 그는 악기 기능사인 ‘게젤레’(Geselle) 타이틀을 얻었다. 타이틀을 보유하면 대부분은 악기 회사에서 제작 인력으로 일하지만, 안 빌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된 오르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5년에 걸친 마이스터 과정에 돌입했다. 마이스터가 되려면 전문학교 졸업장 외에도 관련 직장에서 4년의 경력이 필요했다. “당시 독일에 있는 오르간 관련 회사 200곳 중 50군데에 원서를 냈어요. 그중 한 곳의 사장님이 주 정부 주지사에게 편지까지 보내 설득한 끝에 6개월 만에 비자를 받아냈어요. 정말 고마운 분이죠.” 4년의 현장경험 후엔 다시 학교에서 1년간의 마이스터 과정 준비가 기다린다. 음향학·공기역학·교회 건축사 등 이론부터 경영·노동교육학, 그리고 실제 파이프 오르간 설계와 제작에 이르는 실습까지 모든 시험을 통과한 끝에 비로소 ‘장인’의 자격을 손에 쥐었다. 이 긴 과정을 통과해 ‘파이프 오르간 마이스터’ 직함을 거머쥔 한국인은 안 빌더를 포함해 단 네 명이다. 조율, 제작, 설치, 그리고 교육에 이르는 모든 자격을 인정받은 이들이다.





오르간의 완벽한 화성 자체에 매력
9년의 독일 생활을 마치고 2001년 귀국한 뒤로는 국내 파이프 오르간 40여 개를 전담 관리하고 있다. 이 중 십여 개는 설치 작업에 참여했고, 두 개의 오르간은 직접 제작했다. 안 빌더는 “파이프 오르간은 건축의 일부분”이라며 “설치 공간의 음향적 특성을 고려해 설계해야 하기에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특히 온도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는 만큼 “오르간 빌더 입장에선 온도가 1년 365일 다 똑같았으면 좋겠다”고 웃어 보였다.

파이프 오르간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곡은 뭘까. 기자의 물음에 안 빌더는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형편없는 오디오라도 곡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곡보다는 소리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후자예요. 공연장에서 명곡을 듣다가도 지루해서 오르간 파이프 개수를 세는 사람도 많이 봤는걸요(웃음). 조율하다가 한두 개 음색만으로 완벽한 화성을 만들어낼 때, 저는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완벽한 화성’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에서는 풍금 앞에 마주앉은 소년의 설렘이 느껴졌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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